현실보다 먼저, 마음

불안은 미래 때문이 아니라 미래를 붙잡는 마음 때문에 커진다

by 데브라

불안은 대개

현실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일보다
아직 오지 않은 장면에서 커진다.


머릿속은 빠르다.
삶보다 빠르다.
그래서 우리는
살기도 전에 먼저 지친다.


하루가 시작되면
몸은 방에 있는데
마음은 이미 내일에 가 있다.
다음 주에 가 있다.

한 달 뒤에 가 있다.


그곳에서 마음은
끝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망가지는 장면을 먼저 만들고
그 장면을 사실처럼 믿는다.


불안은 그 믿음에서 자란다.


법구경이 건네는 태도는
거창하지 않다.
미래를 없애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묻는다.


마음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불안한 날의 특징은 분명하다.
마음이 ‘여기’에 없다.
자꾸 ‘그때’로 간다.
자꾸 ‘만약’으로 간다.


만약 실패하면.
만약 버려지면.
만약 무너지면.


그 질문이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그 질문이 너무 오래 머문다는 데 있다.


마음은 머물면 굳는다.
굳으면 세계가 그 모양이 된다.


그래서 불안 앞에서 필요한 건
해답이 아니라
위치를 되찾는 일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
눈은 문장을 따라가고
숨은 들어왔다가 나간다.


그 사이,
아주 조용히 확인해본다.


마음이 어디로 가 있지.


미래에 가 있으면
미래에 가 있다고만 알아차린다.
바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다그치지 않는다.


그저
현재로 돌아올 수 있는 가장 작은 문장을
마음속에 한 번 놓아본다.


지금, 불안이 있다.
지금, 미래가 있다.


이렇게 말하면
불안은 ‘나’가 아니라
‘현상’이 된다.


현상이 되면
숨이 들어갈 자리가 생긴다.

내가 서 있을 자리가 생긴다.


우리는 종종
불안이 커질수록
미래를 더 세게 붙잡는다.


붙잡을수록
미래는 더 멀어지고
현재는 더 비어간다.


그때는
손을 놓는 연습이 아니라
손이 쥐고 있음을 보는 연습이 먼저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중요한 건
불안이 있는 삶에서도
내가 무너지지 않는 방향을 찾는 일이다.


현실은 여기에 있고
나는 여기에 있다.


마음이 다시 달아나더라도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한 문장만큼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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