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닳았다는 신호다
무기력은 갑자기 오지 않는다.
조용히, 오래.
아무 말 없이 쌓이다가
어느 날 문을 닫는다.
해야 할 일은 그대로인데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소한 일도 버겁고
무슨 말을 들어도 마음이 멀다.
그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가장 먼저 의심한다.
“내가 게을러졌나.”
“내가 나약한가.”
“왜 나는 이렇게 못 버티나.”
하지만 무기력은
대개 의지의 부족이 아니다.
마음이 너무 오래
과열되었거나,
너무 오래
버텼다는 신호다.
불안이 마음을 앞으로 끌고 갔다면
무기력은 마음을 뒤로 눕힌다.
분노가 마음을 뜨겁게 했다면
무기력은 마음을 차갑게 만든다.
그리고 비교가 마음을 깎았다면
무기력은 이렇게 속삭인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나.”
그 목소리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 목소리가
삶 전체를 덮어버릴 때다.
무기력이 깊어지면
세상은 흐릿해진다.
좋아하던 것도 시시해지고
기대하던 것도 귀찮아진다.
그때 마음은
큰 질문을 던진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의미를 묻는 질문은
아름답다.
하지만 무기력한 날의 질문은
대개 ‘의미’가 아니라
‘소진’에서 나온다.
법구경이 보여주는 방향은
거창한 희망이 아니다.
불꽃을 다시 키우라고
큰 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오히려
아주 작은 자리부터
회복하라고 한다.
무기력은
삶 전체를 다시 설계해서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다.
먼저
지금 이 순간의 “무게”를
덜어내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
숨은 들어오고 나간다.
그 단순한 반복이
사실은 꽤 많은 일을 한다.
숨은
“살아 있음”을 설명하지 않고
그냥 계속한다.
무기력한 날엔
그 태도가 필요하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지금 당장 찾지 못해도 된다.
의욕이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괜찮아지지 않아도 된다.
대신
딱 하나만 확인해본다.
지금, 무기력이 있다.
이 문장은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문장이 아니다.
나를 덜 다치게 하기 위한 문장이다.
“나는 끝났어”가 아니라
“무기력이 있다”라고 말하는 순간
무기력은 나의 전부가 되지 못한다.
현상이 되면
공간이 생긴다.
공간이 생기면
아주 작은 움직임이 가능해진다.
물을 한 모금 마시는 일.
창문을 여는 일.
빛을 한 번 보는 일.
몸을 한 번 펴는 일.
무기력은
큰 목표로 이기는 게 아니다.
작은 움직임으로
회복의 방향을 다시 잡는다.
오늘 마음이 닳았다면
오늘은 닳은 채로 있어도 된다.
다만
닳은 마음을
더 갈아버리지는 말자.
세상을 다시 사랑하는 힘은
갑자기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살아 있는 쪽으로
조금씩 기울어온다.
그 기울어짐을
지금은
조용히 허락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