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사랑으로도 지치고, 참음으로 더 지친다
관계가 힘든 날이 있다.
정확히는
사람이 힘든 날이라기보다
내가 나를 놓치는 날이다.
좋게 말하고 싶고
상처 주기 싫고
분위기 깨기 싫어서
나는 자꾸
내 마음을 뒤로 미룬다.
처음엔 배려처럼 시작된다.
그다음엔 습관이 되고
마지막엔 성격이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 있다.
좋은 사람이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계속 지우는 방식이다.
관계는 그렇게
조용히 소진을 만든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몸에 남고
넘어간 것들이
마음에 남는다.
나는 참았을 뿐인데
속은 점점 텅 빈다.
그때 우리는
상대의 문제를 찾기 시작한다.
“왜 저 사람은 저럴까.”
“왜 나만 이렇게 맞춰야 하지.”
그 질문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나는 왜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마다
나를 먼저 꺾을까.
왜 나는
거절이 아니라
침묵을 선택할까.
법구경이 들려주는 방향은
관계를 끊으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을 줄이라는 말도 아니다.
다만
마음이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보라고 한다.
참는 마음에는
대개 두려움이 섞여 있다.
거절하면 미움받을까 봐.
선 긋고 나면 관계가 깨질까 봐.
내 욕구를 말하면 이기적일까 봐.
그래서 나는
나를 보호하는 대신
나를 설득한다.
“이 정도는 괜찮아.”
“내가 이해하면 돼.”
“원래 관계는 그런 거야.”
그 말이 반복될수록
마음은 점점
나의 편이 아니게 된다.
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상대가 나를 무너뜨릴 때가 아니라
내가 나를 버릴 때다.
지금 이 문장을 읽는 동안
한 번만
내 안을 살펴본다.
나는 오늘
어디에서 나를 미뤘지.
그리고
아주 작은 문장을 하나 놓아본다.
지금, 피로가 있다.
지금, 서운함이 있다.
이 문장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문장이 아니다.
나를 다시 내 편으로 돌리기 위한 문장이다.
피로가 ‘나’가 되면
관계는 더 탁해진다.
하지만 피로가 ‘현상’이 되면
나는 선택할 수 있다.
말할지.
쉬어갈지.
거리를 둘지.
경계를 세울지.
경계는 차가움이 아니다.
경계는
관계를 오래 가게 하는 온도 조절이다.
너무 뜨거우면 타고
너무 차가우면 얼어붙는다.
좋은 관계는
참는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잃지 않는 방식으로 만든다.
나는 계속 좋은 사람일 수 있다.
다만
나에게도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때부터 관계는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더 진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