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반성이 아니라 반복되는 자책에서 깊어진다
후회는 종종
밤에 온다.
하루가 조용해지는 시간에
말하지 못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그때 마음은
과거를 다시 연다.
이미 끝난 장면을 꺼내
다르게 편집한다.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조금만 참았어야 했는데.
후회는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
그런데도 마음은
계속 같은 장면을 돌려본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마음은 통제감을 원한다.
과거를 다시 돌려보면
마치 내가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번엔 실수를 고칠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 장면이 더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회가 오래가면
반성이 아니라 자책이 된다.
반성은
배우고 앞으로 나아간다.
자책은
나를 붙잡고 뒤로 끌고 간다.
후회가 깊어지는 순간은
대개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나는 왜 항상 이럴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는 자격이 없어.”
그 문장들은
과거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판결한다.
그리고 판결은
삶을 멈춘다.
법구경이 들려주는 방향은
과거를 지워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라는 말도 아니다.
다만
고통이 ‘사실’에서 오는지
‘생각의 반복’에서 오는지
구분하라고 한다.
사실은 한 번 일어난다.
하지만 생각은
수십 번, 수백 번 일어난다.
그래서 사람을 지치게 하는 건
대개 사건이 아니라
사건을 다시 경험하는 마음이다.
지금 이 문장을 읽는 동안
한 번만 멈춰본다.
내 마음은
어떤 장면에 붙잡혀 있지.
그리고
아주 작은 문장을 하나 놓는다.
지금, 후회가 있다.
지금, 자책이 있다.
이 문장은
후회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자책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그저
후회와 나를 분리한다.
“나는 잘못됐어”가 아니라
“후회가 있다”라고 말하는 순간
후회는 나의 전부가 되지 못한다.
현상이 되면
숨이 들어갈 공간이 생긴다.
그리고 선택이 생긴다.
이 후회에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다음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수습은 무엇인지.
후회는
완벽한 정답이 아니라
작은 책임으로 누그러진다.
사과할 수 있다면 사과하고
정리할 수 있다면 정리하고
되돌릴 수 없다면
놓아주는 연습을 시작한다.
놓아준다는 건
기억을 지우는 일이 아니다.
같은 칼로
나를 계속 찌르지 않는 일이다.
과거는 과거로 남아야 한다.
그래야 현재가 자란다.
지금은
지금으로 살아야 한다.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나는 오늘도
한 문장만큼
현재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