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탄 노자

생각과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에 대하여

by 데브라

노자가 소를 타고 국경을 넘는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 장면이 유난히 조용하다고 느꼈다.
위엄도 없고, 긴장도 없고, 무엇을 증명하려는 기색도 없다.
그저 한 사람이 소 위에 올라탄 채, 느린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소는 어쩌면 우리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끌려다니는

생각과 감정이 아닐까 하고.


우리는 대부분 소에게 끌려다닌다.
생각이 떠오르면 따라가고,
감정이 일면 반응하고,
분노·불안·욕망이 방향을 정하면
몸과 말과 선택이 그 뒤를 따른다.


이 상태에서는 내가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늘 무언가에 의해 끌려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을 없애려 하고,
생각을 멈추려 하고,
감정을 위험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노자의 그림 속에는 그런 투쟁의 흔적이 없다.


노자는 소를 없애지 않았다.
도망치지도 않았고, 억지로 길들이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소의 등에 올라타 있다.


소를 탄다는 것은
생각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감정이 없다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소의 힘과 성질을 너무도 잘 알기에
굳이 힘을 겨루지 않아도 되는 상태.


생각은 일어나되,
그 생각이 나를 끌고 가지 못하고
감정은 흐르되,
그 감정이 나를 삼키지 못한다.


주인은 분명 노자이고,
소는 그저 탈것이 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이 장면은 단지 마음 수련에 대한 비유로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대부분 생각과 감정이 만들어낸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생각을 반복하는지,
어떤 감정에 오래 머무는지가
삶의 방향과 결과를 조금씩 바꿔 놓는다.


소에게 끌려다닐 때의 현실은
반응으로 이루어진 세계이고,
소를 타고 있을 때의 현실은
의식적인 선택으로 만들어진 세계다.


생각과 감정을 조종한다는 것
무언가를 억지로 바꾼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방향키를 내가 쥐는 일이다.


이 지점에서 비로소
‘현실을 산다’는 말은
‘현실을 만들어간다’는 말과 겹쳐진다.


수련이란
생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생각 위에 올라타는 것이고,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알아차린 채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의 얼굴에는
긴장 대신 느슨함이 있고,
투쟁 대신 여유가 있다.


그는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어떤 상태로 세상과 마주할지를
이미 알고 있을 뿐이다.


아마 노자는 세상을 버린 것이 아닐 것이다.
이미 안에서 충분히 정리되었기에
더 머물 필요가 없었던 것뿐이다.


소를 탄 채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외부를 떠난다는 뜻이 아니라
내부에서 더 이상 끌려다닐 것이 없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우리는 여전히 소와 함께 산다.
생각과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라질 필요도 없다.


다만,
오늘 하루만큼은
소에게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조용히 소의 등에 올라타 있는 사람이어도 좋지 않을까.


그 상태에서 선택한 말과 행동은
어제와는 조금 다른 현실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그림 속 노자처럼,
어디로 가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길 위에 서 있는 상태로.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