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사건이 아니라, 반복해서 기울어진 마음의 쪽으로 흘러간다
우리는 종종
삶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 수 없다고 느낀다.
계획은 무너지고
변수는 생기고
마음은 흔들린다.
그럴 때 사람은
운명을 말하고
환경을 말하고
타인을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사이에도
항상 남는 것이 있다.
내 마음의 방향.
삶은 완전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삶의 체감은
내 마음이 어디로 기울어 있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어떤 날은 숨이 막히고
어떤 날은 견딜 만하다.
그 차이는
사건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에서 온다.
법구경이 보여주는 길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다.
방향을 묻는 일이다.
나는 지금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가.
불안 쪽인가.
원망 쪽인가.
비교 쪽인가.
자책 쪽인가.
방향이 그쪽이면
말이 그쪽으로 나가고
행동이 그쪽으로 나가고
관계가 그쪽으로 굳는다.
그리고 삶은
그 모양이 된다.
그래서 변화는
성격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기울어짐을 조금 바꾸는 일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이 기울어진 쪽을
한 번만 확인해본다.
그리고
그 기울어짐을 판단하지 말고
그냥 사실로 둔다.
지금, 불안 쪽으로 기울어 있다.
지금, 원망 쪽으로 기울어 있다.
지금, 자책 쪽으로 기울어 있다.
사실을 인정하면
삶은 조금 덜 복잡해진다.
문제는 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방향이 그렇게 잡혀 있다는 것이다.
방향은
다시 잡을 수 있다.
그리고 방향을 바꾸는 데
거대한 힘은 필요 없다.
작은 틈이면 충분하다.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간다.
그 왕복 사이에
아주 작은 질문을 놓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선은 무엇인가.
‘선’은 거창한 선행이 아니다.
내 삶을 덜 무너뜨리는 선택이다.
말을 조금 늦추는 것.
결론을 조금 늦추는 것.
나를 조금 덜 몰아붙이는 것.
오늘의 한 걸음을
무리하지 않는 것으로 정하는 것.
그 작은 선들이 쌓이면
마음의 방향은 바뀐다.
삶은 한 번에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삶은
매일의 방향으로 바뀐다.
지금, 내가 있다.
지금, 숨이 있다.
이 사실이 먼저 서면
나는 흔들리면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삶은 사건이 아니라
반복해서 기울어진 마음의 쪽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마음의 방향을
조금 더 살아지는 쪽으로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