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도(道)는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본래의 빛을 잃으며, 굳이 그 이치를 설파하여도 마음에 오롯이 담아두는 자는 천에 하나, 만에 하나일 뿐이다. 천하의 무리들은 깊고 아득한 무명(無明)의 잠에 빠져 있다. 생로병사와 희로애락, 그 모든 것이 한여름 밤의 꿈이요 아침 햇살에 스러지는 이슬과 같건만, 사람들은 이 사바(娑婆)의 환상을 영원한 실체라 믿고 허우적거린다.
마치 물에 비친 달을 건지려 하듯 헛된 욕망을 향해 끊임없이 손을 뻗으니, 곁에서 아무리 옷깃을 잡아당기고 쇠북을 쳐서 부른들 그 깊고 탁한 잠을 억지로 깨울 도리가 없다. 진리를 말하는 자의 목소리는 광야를 떠도는 허무한 메아리가 될 뿐, 깨어나지 못한 자의 귀에는 한낱 거슬리는 바람 소리에 불과하다.
물에 빠진 자를 밖에서 억지로 건지려 한들, 그는 살고자 발버둥 치며 구하는 이마저 함께 깊은 심연으로 끌어내릴 뿐이다. 참된 구원이란 밖에서 던져주는 튼튼한 동아줄이나 거룩한 성자의 손길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들이마시는 것이 숨을 연장하는 맑은 공기가 아니라 폐를 썩게 하는 탁류(濁流)이며, 스스로가 그 늪에 빠져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비통한 사실을 뼈저리게 깨우치는 데서 비로소 시작된다.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혹은 묵은 허물을 벗어던지는 뱀처럼, 뼈를 깎는 아픔으로 자신이 미몽(迷夢)에 갇혀 있음을 자각하는 자만이 스스로 구원의 밧줄을 엮을 수 있다. 자신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음을 아는 자만이 꿈에서 깨어나기를 갈망하듯, 그 처절한 자각이 있을 때에야 인간은 비로소 질척이는 욕망의 수렁을 딛고 일어나 수면 위로 맑은 연꽃처럼 고개를 내밀 수 있는 법이다.
눈앞의 세상을 보라. 붉은 흙먼지(紅塵)가 일어 하늘을 가리듯 어지럽고 혼탁하며, 권세가의 탐욕과 필부의 애증이 뒤엉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인심은 아침저녁으로 변하여 어제 웃던 자가 오늘 칼을 겨누고, 덧없는 일들은 얽힌 실타래처럼 소란스럽기 그지없어 세상은 곧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로워 보인다.
허나, 가만히 눈을 감고 우주의 깊은 맥박을 짚어보라. 그 요란하고 무질서한 흙먼지 속에서도, 천지를 꿰뚫는 도(道)의 결은 단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만물이 제멋대로 요동치는 듯 보이나, 그 근원에는 음(陰)이 극에 달하면 쇠하고 양(陽)이 피어나며, 그릇이 채워지면 반드시 비워지는 태극(太極)의 섭리가 숨 쉬고 있는 것이다. 혼돈과 어지러움은 오직 찰나를 사는 인간의 짧은 안목이 만들어낸 착시일 뿐이다.
천지자연은 말이 없으나 모든 것을 길러내고, 억지로 다스리지 않으나 어긋남이 없다. 화사한 봄꽃이 지면 이내 차가운 가을 서리가 내리고, 천지를 뒤흔드는 폭풍이 한바탕 몰아친 뒤에는 반드시 구름 걷힌 맑은 달이 떠오른다. 썩은 풀밭에서 반딧불이가 태어나고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 맑은 매화가 피어나듯, 삶과 죽음, 혼돈과 질서는 결코 떨어져 있는 두 개가 아니다.
그러므로 도를 깨우친 자는 아우성치는 세상의 한가운데 서서도, 그 이면에 자리한 아득하고 깊은 고요를 본다. 세상은 끊임없이 무너지고 또 세워지며 혼란한 듯 보이나, 실은 스스로의 거대한 질서 안에서 온전하다. 어리석은 중생들의 탄식과 비명 속에서도, 우주의 커다란 수레바퀴는 멈춤 없이, 그저 무심하고 유구하게 제 갈 길을 굴러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