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의미가 있으면
조금은 덜 흔들릴 거라 믿는다.
이유를 알면 견딜 수 있고,
방향이 있으면 버틸 수 있고,
설명이 되면 마음이 정리될 것 같아서.
그래서 삶이 힘들어질수록
우리는 의미를 찾는다.
이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말,
이 시간이
어딘가로 이어진다는 증거.
의미는
그렇게
마음을 지탱해주는 손잡이처럼 보인다.
실제로 의미는
우리를 꽤 오래 버티게 한다.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주고,
포기하지 않게 잡아끌고,
다시 하루를 시작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의미를 긍정한다.
의미를 신뢰한다.
의미가 있는 삶을
좋은 삶이라고 부른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의미를 붙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상한 감각이 따라온다.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
의미와 맞지 않는 감정들,
아무리 해석해도
말이 되지 않는 장면들.
그때 우리는
삶이 아니라
의미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왜 아직도 힘들지?”
“이 정도면 괜찮아져야 하는 거 아닌가?”
의미는
언제부터인가
우리를 지켜주는 손잡이가 아니라
우리를 재촉하는 기준이 된다.
여기서
흐름은 한 번 꺾인다.
어쩌면
의미는
삶을 구해주는 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의미를 찾았다고 해서
삶이 반드시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고통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의미가 생긴 순간부터
우리는
삶을 설명해야 할 의무를 떠안는다.
잘 견디는 이유,
계속 가야 하는 이유,
버텨야 하는 이유.
설명이 되지 않는 날은
괜히 실패한 하루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다시 던질 수밖에 없다.
의미는
정말 우리를 살게 하는가,
아니면
우리를 더 열심히 버티게만 하는가.
어쩌면
의미는
희망이 아니라
증상일지도 모른다.
삶이 너무 불확실해서,
아직 견뎌야 할 시간이 남아 있어서,
그래서 우리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미는
삶이 안정적일 때보다
삶이 흔들릴 때
더 또렷해진다.
그건
삶이 우리에게
아직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래서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꼭 절망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삶이 더 이상
설명만으로 정리되지 않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표시일 수 있다.
이제는
이유보다
감각으로 살아야 하는 구간.
우리는
끝내 의미를 붙잡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미를 붙잡지 못한 채로도
하루를 살아낸다는 사실.
그 사실 자체가
이미
어떤 설명보다
더 강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희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절망으로도 끝나지 않는다.
다만
이 질문 하나를 남긴다.
의미가 없어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 질문이 남아 있는 한,
이 연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