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사항 없음
나는 요즘 긴 말을 하지 않는다.
긴 말은 오해를 낳고, 오해는 설명을 요구한다.
설명은 피곤하다.
피곤한 사람은 결국 가장 쉬운 말을 고른다.
요약.
처음엔 요약이 편리했다.
긴 글을 읽지 않아도 되고, 긴 대화를 끝까지 듣지 않아도 됐다.
핵심만 알면 된다고 믿었다.
핵심만 알면 나는 더 현명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요약은 언제나 핵심만 남긴다.
사람이 사람으로 남는 건 대개 잔여 쪽인데,
요약은 그 잔여를 조용히 버린다.
나는 메시지를 길게 쓰다가 지운다.
두 문장으로 줄이고,
한 문장으로 줄이고,
마지막에는 짧은 대답만 남긴다.
나는 내 감정을 줄이는 법을 배웠다.
줄이는 것이 성숙처럼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말이 짧아질수록 사람들은 편해한다.
편해할수록 대화는 빨리 끝난다.
빨리 끝나는 대화는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관리하기 쉽다.
나는 관리되기 쉬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숨이 막힌다.
그런데 숨이 막히는 감정조차 길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이 길어지면,
나는 또 설명해야 하니까.
어떤 날은 내 하루가 한 줄로 남는다.
정상.
문제 없음.
특이사항 없음.
특이사항이 없다는 말이 이상하게도 나를 모욕한다.
사람은 특이사항으로 살아 있는 건데,
특이사항이 사라진 자리에는 늘 같은 말만 남는다.
안전.
효율.
최적화.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중간에 마음이 떠난 걸 느낀다.
떠난 자리에는 다른 것이 들어온다.
결론이 뭐야.
요점만 말해.
나는 그 질문을 싫어하면서도
그 질문을 가장 먼저 배우고, 가장 자주 쓰게 됐다.
요약은 대화를 살리는 게 아니라,
대화를 가능한 형태로만 남긴다.
가능한 형태라는 말은 늘 선의처럼 들린다.
불가능한 것은 배려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더 가능한 나로만 남는다.
가능한 감정.
가능한 말.
가능한 관계.
가능하지 않은 나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밤에 글을 읽다가 멈춘다.
길게 이어지는 문장을 보면
내가 죄를 짓는 기분이 든다.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
뒤처지는 기분.
그 기분이 나를 압박한다.
압박이 오래 쌓이면
사람은 결국 스스로를 줄인다.
줄이면 살아남는다.
살아남으면, 그게 옳은 것처럼 보인다.
나는 오늘도 내 하루를 요약한다.
요약하면 마음이 조용해진다.
조용해지는 것이 좋다.
조용해지는 것이 문제다.
나는 오늘도 요약을 선택한다.
그리고 아주 잠깐,
내가 무엇을 내주고 있는지 떠올리려 한다.
떠올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 불편하다.
불편하다는 사실이
가장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