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없는 사람
나는 요즘 ‘안전’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안전이 내 편이라고 믿는 순간,
나는 질문을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
질문을 멈춘 사람은 편해진다.
편해진 사람은 조용해진다.
조용해진 사람은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다루기 쉽다.
처음엔 안전이 고마웠다.
위험을 피하게 해주고, 실수를 줄여주고, 불필요한 충돌을 막아준다.
나는 그걸 배려라고 불렀다.
배려는 선의처럼 보인다.
선의는 의심받지 않는다.
그래서 안전은 늘 가장 먼저 들어온다.
나는 무엇을 말할지 생각하기 전에
무엇을 말하면 안 되는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건 겁 때문이 아니다.
습관 때문이다.
습관은 내가 만든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적응한 것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괜찮다”는 말을 너무 자주 한다.
괜찮다는 말은 편리하다.
괜찮다는 말은 정리된다.
괜찮다는 말은 기록으로 남겨도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
문제가 없는 말만 남기다 보면
내 안에는 문제가 남는다.
나는 그걸 알고도
문제가 없는 말을 고른다.
문제가 있는 말을 고르면
설명이 필요해지고
설명이 길어지고
길어진 설명은 오해가 되고
오해는 공격이 된다.
공격은 위험하다.
위험은 피해야 한다.
나는 결국 안전을 택한다.
그런데 안전을 택하는 동안
나는 내가 무엇을 피하고 있는지 잊는다.
위험을 피하는 게 아니라,
나를 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전이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항상 기준을 요구한다.
무엇이 안전한가.
어떤 말이 안전한가.
어떤 표정이 안전한가.
어떤 관계가 안전한가.
그 기준이 내 안에서 나오지 않을 때,
나는 점점 더 빨리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고개를 끄덕이면 통과한다.
통과하면 살아남는다.
살아남는다는 말이
언제부터 이렇게 초라해졌을까.
나는 오늘도 내 말을 한 번 더 고친다.
날카로운 표현을 지운다.
애매한 표현으로 바꾼다.
부드러운 표현으로 덮는다.
그 과정이 익숙하다.
익숙함은 안전해 보인다.
안전해 보이는 것은 옳아 보인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나는 안전을 택할수록
더 선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사람.
실수를 줄이는 사람.
문제를 만들지 않는 사람.
하지만 그건 선함이 아니라
무게를 줄이는 기술이었는지도 모른다.
무게가 줄면
나는 가벼워진다.
가벼워지면
나는 쉽게 옮겨진다.
옮겨지기 쉬운 사람은
머무르지 못한다.
나는 어디에도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생각에도,
관계에도,
나 자신에게도.
편의는 선의처럼 보인다.
그래서 위험하다.
선의는 의심받지 않으니까.
나는 오늘도 안전을 선택한다.
그리고 아주 잠깐,
내가 무엇을 내주고 있는지 떠올리려 한다.
떠올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 불편하다.
불편하다는 사실이
가장 불편하다.
나는 언젠가,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안전이
나를 지우는 방식이 될까 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