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전에 이미 고쳐지는 시대
나는 요즘 침묵이 늘었다.
말할 게 없어서가 아니다.
말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지 못해서다.
말은 생각보다 먼저 걸러진다.
입술이 열리기 전에
문장이 먼저 고쳐진다.
나는 그 과정을 익숙하게 수행한다.
익숙하다는 건, 내가 이미 길들여졌다는 뜻이다.
처음엔 침묵이 예의였다.
괜히 상처 주지 않으려고.
괜히 오해를 만들지 않으려고.
괜히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예의는 선의처럼 보인다.
선의는 의심받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조용해지면 안전해진다.
안전해지면 문제가 없다.
문제가 없으면 설명이 필요 없다.
설명이 필요 없다는 건 편하다.
편하다는 건 늘 위험하다.
나는 말을 꺼내기 직전에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먼저 떠올린다.
이 말은 과해 보일까.
이 말은 유난으로 들릴까.
이 말은 불편함을 만들까.
불편함은 비용이 된다.
비용을 치르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그 드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침묵을 고른다.
침묵은 모난 데가 없다.
침묵은 기록으로도 깔끔하다.
침묵은 나를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는 사람은
오해받지 않는다.
대신,
이해받지도 않는다.
나는 메시지를 쓰다가 지운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마지막에 남는 건
의미가 아니라 무게가 없는 말이다.
네.
알겠습니다.
괜찮아요.
괜찮다는 말은 편리하다.
괜찮다는 말은 어디에나 들어맞는다.
어디에나 들어맞는 말은
결국 아무 데도 닿지 않는다.
나는 닿지 않는 말만 남기며
닿는 마음을 숨긴다.
숨기는 일이 오래되면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도 숨기게 된다.
나는 내 마음을 숨기다가
내 마음이 어디 있었는지 잊는다.
어떤 날은 누군가의 말이 나를 찌른다.
나는 웃는다.
웃는다는 건 안전하다.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건 위험하다.
위험을 피하는 동안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는 안쪽에서 굳는다.
굳은 상처는 말이 아니다.
굳은 상처는 표정이 된다.
표정은 나를 대신해 말한다.
나는 내가 말하지 않은 것들이
내 얼굴에서 먼저 말하는 걸 본다.
그게 가장 수치스럽다.
수치심은 침묵을 더 두껍게 만든다.
두꺼운 침묵 속에서는
나도 내 목소리를 찾지 못한다.
침묵은 종종 품위처럼 보인다.
감정을 절제하는 사람.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사람.
조용히 버티는 사람.
나는 그 품위를 오래 흉내 냈다.
하지만 침묵이 길어질수록
내 안에서는 다른 소리가 자란다.
말하지 마.
괜히 튀지 마.
괜히 티 내지 마.
티 내지 않는 삶은 편하다.
티 내지 않는 삶은 안전하다.
티 내지 않는 삶은...
살아 있는 삶이 아니다.
나는 오늘도 침묵을 고른다.
그리고 아주 잠깐,
내가 무엇을 내주고 있는지 떠올리려 한다.
떠올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 불편하다.
불편하다는 사실이
가장 불편하다.
나는 언젠가,
내가 지키기 위해 선택한 침묵이
나를 지우는 방식이 될까 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