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이 사라질수록, 나는 줄어든다
나는 요즘 불편함을 참을 이유를 찾지 못한다.
참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게 아니라,
참는다는 선택이 너무 비효율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효율이라는 말은 늘 단정적이다.
더 낫다.
더 빠르다.
더 안전하다.
그 문장들이 쌓이면
느린 쪽은 곧 잘못처럼 보인다.
나는 느린 것을 변명하게 된다.
처음엔 편의가 작은 선물 같았다.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기억하지 않아도 되고,
실수하지 않아도 되고,
맞추지 않아도 된다.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이상하게도 나를 안심시켰다.
안심이 자주 오면
사람은 자신을 덜 확인하게 된다.
나는 어느 날,
내가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내가 맞는지 틀린지 확인하는 게 아니다.
내가 살아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편의는 나를 설득하지 않는다.
편의는 나를 습관으로 만든다.
습관은 조용히 자란다.
처음에는 선택처럼 시작한다.
몇 번 반복하면 반사가 된다.
반사가 되면
질문이 사라진다.
질문이 사라지면
내가 사라진다.
그 과정이 너무 매끈해서
나는 공포를 느낄 틈도 없었다.
편의는 늘 부드럽다.
부드러운 것들은 상처를 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처가 없는 게 아니라,
상처를 느낄 감각이 먼저 사라진다.
나는 그 감각이 사라지는 속도를 모른다.
감각은 소리 없이 줄어드니까.
나는 매일 같은 방식으로 하루를 처리한다.
처리라는 말이 정확하다.
정리하고,
분류하고,
전달하고,
삭제하고,
저장한다.
나는 살고 있는 건지
처리되고 있는 건지
가끔 구분이 안 된다.
구분이 안 될 때마다
나는 더 편한 쪽을 고른다.
편하면 일단 넘어갈 수 있다.
넘어가면 오늘이 끝난다.
끝난 하루는 질문하지 않는다.
편의에는 항상 문장이 붙는다.
간편하게.
자동으로.
기본 설정.
동의하면 계속.
기본 설정이라는 말이 무섭다.
기본이라는 말은 마치 자연처럼 들린다.
원래 그렇다는 뜻처럼.
하지만 기본은 누군가가 정한 것이다.
누군가가 정한 기본에 익숙해질수록
나는 내 기본을 잃는다.
내 기본은 무엇이었지.
내가 느리게 읽던 문장들.
내가 오래 붙들던 생각들.
내가 말끝을 흔들며 겨우 꺼내던 진심.
그런 것들은 전부 불편했다.
불편한 것들이 나를 나로 만들었는데
나는 그 불편함을 지운다.
지우면 편해진다.
편해지면 더 이상 꺼낼 필요가 없다.
꺼낼 필요가 없는 마음은
결국 사라진다.
편의는 내게 친절한 얼굴을 건넨다.
당신을 위해서.
당신의 시간을 위해서.
당신의 안전을 위해서.
나는 그 문장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문장은 의심하지 않게 된다.
의심하지 않는 동안
나는 더 얇아진다.
얇아진 사람은
부딪히지 않는다.
부딪히지 않는 사람은
티가 나지 않는다.
티가 나지 않으면
그냥 지나간다.
그냥 지나가면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가장 무섭다.
편의는 선의처럼 보인다.
그래서 위험하다.
선의는 의심받지 않으니까.
나는 오늘도 편한 쪽을 고른다.
그리고 아주 잠깐,
내가 무엇을 내주고 있는지 떠올리려 한다.
떠올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 불편하다.
불편하다는 사실이
가장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