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

일부러 멈추는 연습

by 데브라

나는 요즘 일부러 멈춘다.


그냥 지나가면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멈추는 건 불편하다.

불편함은 늘 시간과 얼굴을 요구한다.


나는 그걸 오래 피했다.


불편함은 느리다.
느린 것은 뒤처진 것처럼 보인다.


뒤처지는 사람은
설명해야 한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왜 굳이 그러냐고.


굳이라는 말이 무섭다.
굳이라는 말은 어떤 선택을 사치로 만든다.


나는 사치가 아니라
생존을 하고 싶은데
세상은 가끔 생존보다 효율을 더 잘 이해한다.


처음엔 불편함이 자연스러웠다.


기억이 흐릿하면 다시 묻고,
마음이 상하면 말을 꺼내고,
이해가 안 되면 시간을 더 쓰는 것.


그게 사람이 사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편의는 늘 불편함을 대체했다.


대체라는 말이 친절해 보인다.
친절은 선의처럼 들린다.
선의는 의심받지 않는다.


그래서 불편함은
조용히 밀려났다.


나는 불편함을 버린 게 아니다.
불편함을 미뤘다.


오늘만.
이번만.
다음에.


다음이 계속 오면
불편함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불편함은 안쪽으로 옮겨간다.
안쪽으로 옮겨간 불편함은
어느 날 이유 없는 피로가 된다.


나는 이유 없이 피곤해지고,
이유 없이 예민해지고,
이유 없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된다.


이유가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이유는 있다.
다만 나는 그 이유를 말할 언어를 잃었을 뿐이다.


불편함은 언어다.
나를 나에게 번역하는 언어다.


그런데 요즘은 번역을 할 기회가 없다.


요약이 먼저 오고,
추천이 먼저 오고,
기록이 먼저 남고,
안전이 먼저 기준을 세운다.


그 기준에 맞지 않는 감정은

나중으로 밀린다.


나중으로 밀린 감정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무거워진 감정은
말이 되지 못한다.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은
결국 나를 잠식한다.


나는 그걸 알고도
계속 편한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편한 쪽은 늘 빠르다.
빠른 것은 옳아 보인다.

옳아 보이는 것은 선해 보인다.


그런데 선한 것처럼 보이는 선택들이
나를 점점 더 얇게 만들었다.


나는 그래서 불편함을 다시 선택한다.


선택한다고 말했지만
실은 작은 행동이다.


한 번 더 읽는 것.
한 번 더 묻는 것.
한 번 더 기다리는 것.


한 번 더 기다리면
내가 불편해진다.


불편해지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


살아 있음은 편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편한 쪽만 택해왔다.


나는 오늘 한 가지를 늦춘다.


바로 누르지 않는다.
바로 지우지 않는다.
바로 넘기지 않는다.


그 잠깐의 지연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불편함은 거슬린다.
거슬리는 감각은
내가 아직 나를 잃지 않았다는 신호다.


편의는 선의처럼 보인다.
그래서 위험하다.


선의는 의심받지 않으니까.


나는 오늘도 불편함을 견딘다.
그리고 아주 잠깐,
내가 무엇을 되찾고 있는지 떠올리려 한다.


떠올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 불편하다.


불편하다는 사실이
가장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