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무엇을 내 것으로 남길 것인가
나는 요즘 선택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선택은 내가 하는 것 같지만
선택을 하기 전에 이미 많은 것들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기본 설정.
추천.
요약.
기록.
안전.
그것들은 내가 고르기 전에
내가 고를 수 있는 모양을 먼저 만든다.
나는 그 모양 안에서만 움직인다.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자유처럼 보인다.
자유처럼 보이는 것은
의심받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의심을 미뤄왔다.
의심은 불편하다.
불편함은 시간과 얼굴을 요구한다.
나는 그 비용을 내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게 합리적이라고 믿었다.
합리적이라는 말은 늘 선의처럼 들린다.
선의는 의심받지 않는다.
그동안 나는 많은 것을 놓쳤다.
놓쳤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나는 스스로 놓아버렸다.
나는 더 빨리 동의했고,
더 빨리 넘겼고,
더 빨리 지웠고,
더 빨리 저장했다.
빨라지면 깔끔해진다.
깔끔해지면 문제가 없다.
문제가 없으면
나는 안전해진다.
안전해지면
나는 조용해진다.
조용해지면
나는 사라진다.
사라지는 과정은 늘 매끈했다.
매끈한 것은 아름다워 보인다.
그래서 나는 내 손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날은
나도 모르게 멈추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너무 오래 ‘괜찮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괜찮다는 말로는
내 안의 무게를 옮길 수 없다.
무게는 남는다.
남은 무게는 언젠가 나를 찾는다.
그때 나는 늦게 깨닫는다.
나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피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오늘
선택을 다시 배우기로 한다.
거창한 선택이 아니다.
작은 불편함을 견디는 선택.
한 번 더 읽는 선택.
한 번 더 묻는 선택.
한 번 더 늦추는 선택.
그 선택들이 쌓이면
나는 다시 나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편의를 좋아한다.
나는 여전히 안전을 원한다.
나는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편의가 선의의 얼굴을 쓰는 순간을
나는 더 이상 모른 척하지 않기로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나를 지우는 선택이 아니라
나를 남기는 선택을 하려 한다.
남긴다는 건
기록을 많이 쌓는다는 뜻이 아니다.
남긴다는 건
내 안에서 끝나지 않은 것들을
끝까지 보겠다는 뜻이다.
나는 오늘도 화면 앞에 앉아
작은 버튼들을 만진다.
동의.
추천.
요약.
저장.
나는 그 버튼들을 완전히 버릴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
그 버튼들 앞에서
한 번 더 멈출 수는 있다.
그 멈춤이
내가 아직 나를 잃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길 바란다.
편의는 선의처럼 보인다.
그래서 위험하다.
선의는 의심받지 않으니까.
나는 오늘도 선택한다.
그리고 아주 잠깐,
내가 무엇을 내주고 있는지 떠올리려 한다.
떠올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 불편하다.
불편하다는 사실이
가장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