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없이 흘러간 시간에 대하여
이 연재는 무엇에 대한 기록인가
이 연재는
•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시간”
• “설명하기 어려운 공백”
• “이력서에 쓸 수 없는 날들”
에 대한 재해석이다.
지금까지의 연재가
계속 가는 구조
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연재는
그렇게 간 시간이 실제로 무엇을 만들었는가
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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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나는
성과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열심히 살았다고 말하기도 애매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그 시기를
이렇게 정리해 버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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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동안
눈에 띄는 결과는 없었다.
돈도, 직함도,
설명하기 쉬운 성취도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이 시간은
나를 망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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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상한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과는 없었지만,
그 시간에 하지 않게 된 것들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결정하는 일,
남의 기준에 맞춰 속도를 정하는 일,
설명되지 않는 불안을
억지로 덮어두는 일.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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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가 없던 그 시간은
나를 앞으로 보내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걸 막아주고 있었다.
무작정 빨라지는 대신
자주 멈춰 서게 했고,
그 덕분에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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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시간에 가까웠다.
아무 성과 없이 지나간 날들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기보다,
쉽게 부서지지 않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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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는
그 시간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건 나를 지연시킨 시간이 아니라,
나를 보호한 시간이었다.
당장은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 덕분에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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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금도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이 잘못 가고 있다고 느낀다면,
이 질문을 남겨두고 싶다.
그 시간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었을까.
아니면,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변화의 시간이었을까.
어떤 시간은
끝나고 나서야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