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는
매일 무언가를 하고 있었지만,
매일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으로 잠들었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말할 수 있었지만,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게 가장 괴로웠다.
아침이 되면
해야 할 일들은 늘 있었다.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고,
정해진 시간에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항상 같은 질문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살아서
대체 뭐가 남을까.
그곳에서는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어디로 가든 정해진 시간에 움직였고,
기다리는 것도 멈추는 것도
내 선택이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계속 계산했다.
나가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어떻게 따라잡을지,
얼마나 빨리
이전의 시간을 회수할 수 있을지.
그러다 어느 순간,
그 계산이 멈췄다.
더 빨리 가는 방법을 생각할수록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이미 여러 번
빨리 가려다 잘못 온 길들이
머릿속에서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충분히 돌아와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돌아온 인생이라면,
이번에는
나만의 방식으로 가보자.
남들보다 늦어도 괜찮고,
설명되지 않아도 괜찮고,
한참 돌아가도 괜찮으니까.
그 선택은
포기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더 이상 앞서가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경쟁에서 내려오는 선택처럼.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포기가 아니었다.
그건
다시 망가지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속도를 포기한 게 아니라,
속도를 결정하는 권한을 되찾았다.
누가 정해준 빠름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빠름.
그 이후로
나는 선택 앞에서
“이게 맞을까?”보다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를 먼저 묻게 됐다.
성과가 없던 그 시간은
나를 앞으로 보내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걸
막아주고 있었다.
무작정 빨라지는 대신
자주 멈춰 서게 했고,
그 덕분에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무언가를 쌓는 시간이 아니라,
잘못된 것들을 덜어내는 시간에 가까웠다.
급한 선택,
남의 속도에 맞춰 나를 재촉하던 방식,
설명되지 않는 불안을
억지로 덮어두던 습관.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걸 하나씩 내려놓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시간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건 나를 지연시킨 시간이 아니라,
나를 보호한 시간이었다.
당장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빨리 가기 위해 인생을 건너뛰고,
어떤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위해
속도를 늦춘다.
나는 이제
더 빨리 가는 선택이 아니라,
다시 망가지지 않는 선택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