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하지 않은 채로 살아 있는 얼굴들

by Late Realizations

요즘 나는

결정하지 않은 채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아직 선택하지 않았고,

방향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멈춰 있지도 않은 상태.


그들은

결정의 문 앞에 서 있는 게 아니라,

결정 없이도 흘러가는 시간 속에

그냥 서 있다.



이상하게도

그 얼굴들은 불안해 보이지 않는다.


확신이 없는데도,

다음이 보이지 않는데도

초조해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를 미루고 있다는 느낌보다

아직 건드리지 않고 있다는 인상에 가깝다.



우리는 보통

결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정하지 않는 시간을

애매함이나 회피로 부른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결정을 하지 않는 상태에도

분명한 태도가 있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대신 하루를 통과한다.


오늘 해야 할 말을 줄이고,

지금 필요 없는 선택을 하지 않고,

괜히 방향을 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결정하지 않음으로써

하루를 망치지 않는 쪽을 택한다.



결정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그 결정이 만들어낼

되돌림을 더 먼저 떠올리는 얼굴.


그래서

아직은 정하지 않는 게

가장 정확한 판단처럼 보이는 순간들.



나는 요즘

그런 상태가

꽤 성숙해 보인다고 느낀다.


확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확신 없이도

견딜 줄 아는 태도.


결정을 미루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결정을

하지 않는 선택.



어쩌면 우리는

결정을 너무 빨리

‘정리’로 사용해 왔는지도 모른다.


불안한 상태를 끝내기 위해,

설명되지 않은 시간을 덮기 위해,

아직 열리지 않은 가능성을

말로 닫기 위해.



혹시 지금

아직 결정하지 않은 일이 있다면

그 상태를

당장 다른 말로 바꾸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결정되지 않은 채로도

하루는 흘러가고,

어떤 얼굴들은

그 안에서 충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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