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보지 않는 속도로 걷는 사람

by Late Realizations

가끔은

아무도 보지 않는 속도로 걷고 싶어진다.

누가 뒤에 있는지도,

앞서 가는 사람이 있는지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속도.


요즘은

속도가 늘 공개되는 시대다.

얼마나 빨리 도착했는지,

얼마나 많이 해냈는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가

자연스럽게 비교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속도를 설명하려 든다.

왜 늦었는지,

왜 멈췄는지,

왜 지금 이 정도인지.


나 역시 그랬다.

조금만 속도가 느려지면

괜히 이유를 붙였다.

이건 준비 중이고,

이건 다음을 위한 과정이고,

이건 잠깐 쉬는 거라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설명이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든다는 걸 느꼈다.

설명은 속도를 정당화해 주기보다

다시 달려야 할 이유를

계속 만들어냈다.


그래서 요즘은

속도를 숨긴다.

잘 가고 있는지도,

어디쯤 있는지도

굳이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보지 않는 속도로 걷는 시간에는

비교가 없다.

판단도 없다.

남는 건

지금의 나와

지금의 발걸음뿐이다.


그 속도가

빠른지 느린지는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느라

나 자신을 잃지는 않으니까.


아무도 보지 않는 속도로 걷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쉽게 지치지도 않는다.

속도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잘 가고 있는지 묻지 않아도 되고,

언제 도착할지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오늘도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속도로

조용히 걷고 있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의 속도가

나를 망치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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