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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Jan 17. 2016

낡은 연애사에 '스릴러'를 끼얹는다면

[리뷰]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나를 찾아줘>

※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한 줄거리가 나와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하려면 읽지 않기를 권합니다.


지난 2014년 가을 개봉한 <나를 찾아줘>가 문득 다시 떠올랐다. '곤 걸(Gone Girl)'이 원제인 이 영화는 데이비드 핀처가 감독을 맡았다. 최근 개봉한 영화 <헤이트풀8>이 그랬던 것처럼, <나를 찾아줘>도 느릿한 스릴러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이뤄지는 화면 전환, 추격전이 없는 줄거리, 그런데도 긴장감을 놓지 않는 구성까지.


먼저 대략의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남들이 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부부 에이미와 닉, 두 사람은 결혼 5주년을 맞이한 사이다.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유명 동화가 에이미의 어린 시절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서 경제적으로도 풍족하다. 둘 사이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남편인 닉은 아내의 도움으로 본인의 동생과 함께 자그마한 바를 운영 중이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삶 같다.


그런데 결혼 5주년 날 아침, 에이미가 사라진다. 닉은 지난 결혼기념일에 그랬듯이, 아내가 자신을 향한 게임을 걸어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만 알 수 있는 단서를 남기고, 마침내 닉이 에이미를 찾으면 뜨거운 밤을 보내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하지만 이번엔 이야기가 다르다. 집안에서 이상한 흔적을 발견한 닉은 경찰에 전화한다. 에이미의 실종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부부의 집에 방문한다. 그리고 발견되는 혈흔.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결혼 5주년 기념일에 사라진 에이미, 과연 어디로 갔을까


닉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에이미의 실종'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돌아오라"고 밝히고, 납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다. 누가 그녀를 데리고 있다면 "제발 보내달라"고 말하며 카메라 앞에서 울먹인다.


경찰은 수사하면서 점점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사실 부부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 에이미가 일기장에 '살해 위협'을 적은 부분, 그리고 이미 식어버린 관계와 불륜의 가능성. 늘어가는 단서는 '닉이 에이미를 죽였다'는 정황을 하나둘씩 뒷받침하기 시작한다.


남편 닉은 미칠 지경이다. 최근 소원해진 아내가 못마땅하긴 했어도, 결코 죽일 정도로 미워한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아내를 죽이려 한 적도 없다. '혹시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에이미를 죽인 걸까?' 그럴 리 없다. 아무리 닉이 정신없이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그럴 정도로 냉혈한 인간은 아니다.


실종 사건이 살인 사건으로 둔갑하는 사이, '평소의 결혼기념식처럼 흘러갈 것 같던' 날은 악몽으로 변한다. 닉이 에이미를 찾지 못한다면, 혹은 그녀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면 그는 꼼짝없이 사형을 선고받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영화의 중반부에 에이미가 등장한다. 그녀는 남편이 용의자로 몰리는 상황에서 TV로 뉴스를 보면서 남몰래 웃는다. 정확히 그녀가 바라던 대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사실 결혼 5년 차가 되고, 남편이 소원해진 것에 불쾌하기는 에이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에이미는 닉을 사랑했다. 그가 운영하는 바에 들렀다가 닉이 바람 피는 장면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남편의 외도를 목격한 에이미는 분노에 차서 복수를 결심한다. 그 복수가 바로 결혼 5주년에 선물한 사형 선고 계획이었다. 에이미는 일부러 자신의 피를 뽑아내서 바닥에 흘려놓고, 꾸며낸 살해 위협을 일기장에 적었다. 이웃에게는 남편이 자신을 때렸다고 거짓말로 '폭로'하기도 했다. 모든 정황 증거들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한 것이다. 이 남자가 나를 죽였다고 사람들이 믿도록, 그래서 살인범이 되도록 만드는 것.


낡은 연애사에 스릴러를 끼얹는다면


영화 <나를 찾아줘>의 결말은, 본 사람은 알다시피 둘의 재결합이다. 닉은 사형선고를 받지 않고 무죄를 인정받는다. 에이미는 닉에게 돌아와서 둘은 다시 부부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것은 "남자의 사랑고백"이다. 자신이 아내에게 무신경했음을 깨닫고, 다시 관계를 위해 노력하겠노라고 진심으로 다짐한 장면. 연애 초기에 보였던 그 표정으로 건넨 남자의 말이 에이미의 마음을 겨우 돌려놓을 수 있었다.


'스릴러'의 결말이라고 하기엔 다소 싱겁다는 반응도 있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자. '사이코패스'라는 소재와 '스릴러'라는 장르, 영화의 외피를 만드는 요소를 걷어내고 보면 이건 단순한 '연애영화'의 줄거리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피와 칼부림이 등장하긴 하지만.


만남과 헤어짐, 관계가 식어가는 과정과 그게 질기게 이어지기도 결국 파국을 맞기도 하는 장면을 영화는 지긋이 카메라에 담아낸다. 단순하고도 어려운사랑 이야기에 다른 장치를 조합하고, 오래되서 낡은 연애사에 스릴러를 덧입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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