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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Jan 18. 2016

역사학도가 2차 대전 영국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면

[서평] 코니 윌리스의 SF 단편 모음집 <화재감시원>

SF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이름이 바로 작가 코니 윌리스다. 최근 그의 단편 모음집이 국내에서 다시 출간됐다. 지난 2015년 12월 20일에 나온 <화재감시원>에 관한 이야기다. 


코니 윌리스의 소설은 어지러운 사건의 중심에서 시작된다. 매번 이야기가 시작될 때, 등장인물의 수다와 복잡한 상황이 어지럽게 나열된다. 이야기의 맥락을 파악할 틈도 없이 독자가 무작정 꼬인 매듭부터 풀어야 하는 느낌이랄까.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하면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샌가 상황이 퍼즐 맞추는 것처럼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결말을 읽을 때쯤엔 이야기 초반부의 '어지러워 보였던' 소재들이 하나씩 정겹게 느껴질 정도다.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은 느낌이 든다. 그게 <화재감시원>에 실린 코니 윌리스 소설들의 매력이다. 


2차 세계대전 영국으로 떠난 역사학과 학생 


이야기 중 책의 제목과 같은 단편 '화재감시원'을 보자. 주인공은 시간여행이 가능한 시대를 살아가는 역사학과 학생이다. 젊은 역사학도는 짧은 준비기간에 학과 '과제' 때문에 과거로 떠나게 된다. 시기는 그가 원하던 것과 동떨어진 2차 세계대전의 영국. 독일군의 폭격 속에서 주인공 '바솔로뮤'는 세인트 폴 대성당을 지키는 화재감시원으로 살아간다. 


과제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그는 런던을 떠돈다. 소설은 주인공이 화재감시원으로 일하면서 지내면서 적은 일지의 형식이다. 낮에는 대성당의 좁은 구석에서 잠을 자고, 밤에는 성당 주위를 순찰한다. 독일 폭격기의 공격에 성당 건물이 타 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화재감시원의 임무다. 


이야기를 읽는 독자와 주인공은 '세인트 폴 대성당이 전쟁의 참화를 이겨낸다'는 역사를 알고 있다. 하지만 당장 폭격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주인공은 불을 끄러 다니는 일이 고되고 괴롭기만 하다. '이런 과제가 도대체 무슨 목적일까' 생각해보지만 도무지 답이 떠오르질 않는다. 


고민 속에서 하루 하루 절망에 잠겨가면서도 바솔로뮤는 화재감시원의 일을 놓지 않는다. 실제 벌어졌던 역사와 상상의 영역을 적절히 섞으면서 코니 윌리스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가 주는 뭉클함은 기대 이상이다. '런던 대공습'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역사학도의 운명은 과연 어찌 될는지, 독자가 직접 확인해보길 권하고 싶다. 


개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SF 소설 

코니 윌리스의 소설은 하나같이 독특한 소재를 보여준다. 단편 '나일강의 죽음'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인용해서 등장인물이 '우리가 지금 죽은 건지 아닌지' 모를 상황이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는 참사 이후에 어느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내부 소행'은 추리와 심령의 요소가 버무려진 아슬아슬함을 제공한다. 


코니 윌리스의 특징이라면, 'SF소설'을 생각할 때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것과 다른 방향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우주를 오가는 거대한 전쟁, 행성의 운명을 건 복수와 같은 '거대 서사'보다 다른 쪽을 다룬다. 그보다는 개인의 이야기, 소소한 이들의 삶과 감정을 더욱 파고들어 이야기를 펼친다. 시간 여행, 대참사, 죽은 영혼의 귀환까지 모두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기 위한 소재로 작용하고, 이야기가 소재에 파묻히는 경우는 보이지 않는다. 


'정말 재밌어서' 책장을 쉬지 않고 넘기면서, 그런데도 소설이 끝나간다는 사실에 아쉬운 경험은 오랜만이었다. <화재감시원> 덕분에 몇 년 만에 독서열에 불이 붙은 기분이랄까. 그러고 보면 책에서 가장 처음으로 읽은 이야기 '리알토에서'가 떠오른다. 뒤죽박죽인 물리학회의 풍경을 설명하면서, 그게 사실 '양자역학' 이론 자체를 주인공의 이야기에 버무린 재치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으면 다시 책장을 처음으로 되돌려 읽게 된다. 코니 윌리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두고두고 곱씹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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