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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Jan 18. 2016

총성과 살인, '늑대들의 세계'와 현실은 얼마나 다를까

[리뷰] 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는 충격적인 오프닝으로 시작한다. 급습한 마약 조직의 건물이 온통 시체로 가득하더니 이내 폭발이 이어진다. 미국으로 스며드는 남미 마약조직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주인공 케이트 메이서(에밀리 블런트)는 FBI 소속으로 사건에 말려들게 된다.


동료를 잃은 케이트는 '마약 조직을 소탕하는 작전에 동참하겠느냐'고 맷 그레이버(조슈 브롤린)로부터 제의를 받는다. CIA와 군, 인근 지역 보안관까지  총동원되는 작전에 케이트는 선뜻 들어가겠다고 답한다.


임무를 위해 미국 국경으로 떠난 케이트는 알레한드로(베네치오 델 토로) 등의 인물과 합류한다. 작전에 대한 상세한 브리핑도 없이 다짜고짜 멕시코 후아레즈로 떠난다. 마약 조직 두목의 측근을 미국으로 송환하기 위한 작전,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사건의 내막을 파악할 틈이 부족한 상황에서 케이트는 정신없이 총격전에 휘말린다.


미국으로 스며든 남미 마약 조직, 그 뿌리를 찾아서


미처 준비할 겨를도 없이 끌려가는 건 관객도 케이트와 마찬가지 신세다. 남미 마약 조직이 미국에  뿌리내렸고, 여기저기 스며들어 경찰까지 타락하게 만드는 광경을 영화는 보여준다. 케이트와 멧이 속한 부대는 그 뿌리를 찾아서 박살 내겠다는 목표만으로 맹렬하게 돌진한다.


케이트는 점점 혼란스러운 기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자신이 기대했던 작전과 거리가 멀다. 점점 이 작전이 합법적인 것인지, 혹은 누구를 위한 진압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런데도 이젠 뒤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 케이트가 나름의 수사를 진행하고 다른 방식으로 마약 조직을 추적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영화가 초지일관 액션으로 관객의 시야를 채우지는 않는다. 오히려 총격전 등의 극한 장면은 잘 절제된 상태로 줄거리와 조화를 이룬다. 영화는 배우들과 시나리오가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통해 더욱 묵직한 장면을 연출한다.


숨을 곳 없는 남미 주택가의 풍경, 구름이 떠오른 하늘 아래서 울려 퍼지는 총성. 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는 영상미로도 괜찮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다만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최소한의 액션으로도 관객을 끌어들이는 몰입도가 높다는 점이다. 베네치오 델 토로의 연기력은 그야말로 카리스마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인 연방수사국 요원의 모습을 연기한 에밀리 블런트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영화 내내 흐르는 음악도 긴장감을 높인다.


이분법으로 선을 그을 수 없는 세계


영화는 꾸준히 알레한드로, 케이트 메이서, 그리고 이름 모를 멕시코 경찰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비춘다. 복수하기 위해 작전에 뛰어든 사람, 정의를 구현하고 싶지만 어리둥절한 사람, 아들을 위해 살면서 비리를 저지른 사람. 이들의 모습은 거대한 조직 간의 싸움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계속 스크린에 오른다. 그러면서 결국 마약 조직의 소탕과 미국 공권력의 대결에 투입된 병력들도 결국 개인의 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는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명료하게 선을 그을 수 없는 세계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세계가 미국 현실의 일상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다는 것도 보여준다. 총성이 들리는 멕시코 주택가, 미국 어느 귀퉁이에서 축구를 즐기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엑스트라들의 모습에서 이를 확인하라는 듯이.


"이곳을 떠나. 여긴 이제 늑대들의 세계야. 당신은 늑대가 아니잖아."


영화의 영상과 음악, 줄거리가 조합해서 주는 전율은 후반에 이르러 씁쓸함으로 변한다. 결국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는 잘 만든 픽션이지만, 남미와 맞닿은 미국의 현실이 과연 이와 얼마나 다를까. 오히려 실제로는 마약 조직이 영화보다 더 건재할 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나.


영상으로 극대화한 가상의 이야기는 때로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도 분명 그런 지점에서 충분히 역할을 수행한다. 자막이 오른 뒤에도 남는 뒷맛은 꽤 텁텁하다. 실감 나는 액션과 아슬아슬한 액션이 주는 묘미만큼이나 이야기가 지적한 지점이 꽤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과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늑대들이 살던 영화 속 공간과 얼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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