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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Mar 06. 2016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라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보여준 것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2002년 미국 일간지 <포스턴 글로브> 소속 탐사취재팀이 교회 내부에서 벌어진 아동 성범죄와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정황을 보도한 것이 내용이다.


네 명의 기자들이 한 팀이 되어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가는 과정이 묘사된다. 제보를 받고, 취재원을 찾아 증언을 듣는다. "메모 좀 할게요"라는 말과 함께 볼펜이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 종이가 휘날리는 소리가 대사와 함께 귓가에 울린다. 과거 기사를 찾고, 자료를 수집해서 제보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한다.


2001년 미국에서 9.11테러가 벌어진 상황, 종교단체를 상대한다는 심리적 부담감,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회유와 압력 등에도 스포트라이트 팀은 취재를 포기하지 않는다. 타락한 종교인 한 사람의 이야기로 특종을 보도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개인의 잘못을 보도하는 것은 자극적인 소재가 될 수도 있지만, 사회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들은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 기사가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조명할 수 있을 분량으로 쌓일 때까지 보도를 미루고 자료를 더 확보한다.



<스포트라이트>가 기자들의 취재 모습을 다루는 방식과 영화속 기자들은 서로 닮았다. 영화는 소재를 이용해서 미국 추기경과 신부를 악당으로 묘사할 수도 있었다. 그들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기자들을 영웅으로 미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양 쪽 어디로도 나아가지 않는다. 그저 덤덤하게 기자들이 사건을 보도하는 과정을 담았다.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그저 기록의 차원이 아닌 극의 영역에서 긴장감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영화 <스포트라이트>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실제 스포트라이트 팀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 <스포트라이트>도 영화로 자신들이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알고 이를 구성해냈다.


마치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영화 같다. 그들은 교회 성추문 관련 기사를 한 해 600건 가까이 써냈다.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 아일랜드, 호주의 교회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까지 밝혀내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후 교회가, 서로 쉬쉬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얼마나 바뀌었을까?


<스포트라이트>는 낙관적인 해피엔딩이나 냉소적인 결말로 마무리하지 않는다. 언론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 외에는 어떤 '메시지'에 무게를 싣느라 애쓰지도 않는다. 분명한 색깔이나 방향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이야기와 사실적 묘사만으로 몰입하며 볼 영화를 만들어냈다. 언론이 내야 할 자성의 목소리까지 포함하면서. 그것만으로도 <스포트라이트>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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