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수 Sep 20. 2019

'90년대생'의 특징은 '공정성', 정말?

내가 손해 못 참는 게 공정성 감각? 90년대생만의 일도 아니다

요즘 '90년대생의 공정성' 같은 걸 다룬 책도 여럿 출간되고 사회의 이슈가 되어가는 듯한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내가 손해 보는 일에는 참지 않는 것'은 공정성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게 아니라 이기주의에 가까운 일 아닌가? 그리고 이게 '요즘 세대'의 특징이라고 여기며 타자화하기엔 이미 여러 세대에 스며들고 있는 현상 아닐까. 


'공정함'으로 포장하기에는 최근 사례로 거론되는 것들 중 부적절한 일들이 꽤 보인다. 젠더 문제에서 차별 해소를 위한 정책을 역차별로 규정한다거나, 소수자를 위한 배려를 '다수자를 규제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들. 부당한 처우에 파업-농성하는 노동자들을 보고 '시험 본 정규직도 아니면서 무슨' 하며 비웃는 댓글들.


내가 크게 이득 볼 일이 없거나, 혹은 조금은 손해 보더라도 정책의 전체적인 방향이 맞다면 참고 지내며 합의할 줄 알아야, 차후에 다른 정책이 '내가 포함된 그룹 위주'로 위해 쓰이는 것도 적극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집단도 소외되지 않게 골고루 정책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거기서 나와 내가 속한 집단이 빠지면 안된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불공정한 것'이라는 식의 사고 흐름을 '공정성에 대한 감각'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정책이 추진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도 하다. 세대별로 계층별로 다양한 정책을 진행하면서 다른 효과를 볼 수 있게 추진하는 건 '공정하지 못한 일'이 되어버리고, 어떤 집단도 누락되지 않게 모든 정책을 펴야 한다면... 그게 정말 실현 가능한 일일까. 


'조금이라도 (내가 속한)특정 집단이 손해 보면 참을 수 없다'라는 주장을 사회의 모든 그룹에서 쏟아내면 도대체 사회적 차원에서 무얼 어떻게 추진할 수 있을까? 


내 입장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다시 대학 갈 일이 없을 때도 '반값등록금' 정책에 찬성하는 편이었다. 내가 당장 이득을 보지 못한다고 발끈할 일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판단 근거로 조금 다른 걸 볼 수도 있어야 하지 않나. 분배를 목적으로 대학생들의 학비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 필요하다면, 대학생이 아닌 이들의 합의도 어느 정도 필요하기 마련이다. '내가 대상자가 아니므로 그런 혜택에는 반대'라는 생각으로 특정 집단을 향한 복지에 반발하는 게 어떤 효용이 있을지 모르겠고, 그게 공정성에 대한 물음인지는 더욱 모를 일이다.


다른 이가 혜택을 보는 게 옳은 일인지 판단하는 데 '나는 어쩌라고?'가 주요하게 적용되는 게 이성적인 판단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모든 정책이 늘 한국의 모든 구성원을 위해 이뤄지기는 어렵다. 특히 소수자를 위한 정책 등에서는 더욱 그렇다.


또한 이런 발상이 90년대생에만 적용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기적으로 판단하고 반응하지 말아야 하는 건 전 세대에 걸쳐 필요한 일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부의 격차가 벌어지는 오늘날, '나는 공정함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명목으로 차별을 주장하는 일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게 됐다. '요즘 것들은'이라는 식으로 90년대생을 지적하며 다룰 게 아니라, 모든 세대가 돌아봐야 할 지점이다. 저울에 올라가야 할 세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당장 이 정책이 옳은가'를 '나의 혜택'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정말 '이성적이고 공정성에 대한 감각이 남달라서 가능한 일'일까? 정말로?

작가의 이전글 차별과 혐오를 넘어 '인간다움'을 보여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