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천관율 기자와 정한울 여론분석전문위원의 책 <20대 남자>
최근,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 20대 남성에 대해 정부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지난 2019년 2월 공개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보고서는 현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의 지지율 급락을 짚었다. 보고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2017년 6월 한국갤럽이 조사한 20대 남성의 국정지지율은 87%에 달했으나 2018년 6월 혜화역 규탄시위 후 급하락 추세로 반전됨”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20대 여성은 민주화 이후 개인주의, 페미니즘 등의 가치로 무장한 새로운 ‘집단이기주의’ 감성의 진보집단으로 급부상했다”라고 설명했다. 보고서의 이 부분에서 페미니즘을 두고 ‘집단 이기주의’라고 표현한 게 문제로 지적돼 비판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20대 남성이 오늘날 이처럼 주목받는 대상이 된 걸까? 천관율 <시사인> 기자가 쓴 책 <20대 남자>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궁금증이 풀릴 듯하다.
‘남성 마이너리티’ 자의식의 탄생
2019년 9월 발간된 <20대 남자>는 시사주간지 <시사인(시사IN)>을 통해 지난 4~5월 공개된 '20대 남자, 그들은 누구인가' 3부작 기획 기사와 관련 내용, 뒷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천관율 <시사인> 기자와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전문위원이 함께 조사하고 썼다.
글을 쓰기 위해 두 사람은 19세 이상 성인 남녀 총 1000명(20대 응답자만 500명)을 대상으로 208개의 질문을 던졌다. 이들이 설문을 통해 얻은 방대한 자료가 책에 설명과 함께 담겼다.
몇 개의 문답으로 조사 대상의 성격을 단순히 뭉뚱그리지 않기 위해 세밀하게 질문을 준비하다 보니 208개의 문항이 짜였다. 설문 결과를 통해 저자들은 ‘20대 남성’들만의 특별한 정체성이 발견됐다고 지적한다. 바로 20대 남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약자라고 여기며, 차별을 겪는 존재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남성 차별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20대 남자는 30.5%다. 30세 이상 남자로 가면 이 응답은 8.2%에 그친다. 22.3%포인트 차이가 난다.
이 숫자는 보기보다 더 의미심장하다. 젠더와 권력이 만나는,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이 드러나는 거의 모든 문항에서 20대 남자의 응답은 30세 이상의 남자의 응답과 20%포인트 정도 차이가 난다.” - 본문 60쪽 중에서
설문 결과를 조목조목 살펴보면, 자신들이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는 20대 남성의 비율이 다른 나이대의 남성보다 유독 높다. 이들이 소수자 정체성을 갖게 된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권력 개입’에 대한 강한 혐오
책에 따르면, 설문 중 ‘젠더’와 ‘권력’이란 키워드가 결합되는 질문에 20대 남성은 유독 자신들이 약자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응한다. 다른 나이대의 남성과 비교해도 두드러질 정도인데, 20대 남성 중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문항에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비율이 25.9%였다. 다른 나이대의 남성과 달리 20대 남성 사이에서는 이 비율이 공고하게 유지됐다.
‘반 페미니즘 정체성 집단’이라고 저자가 이름 붙인 이들은 법과 연애 시장 등의 분야에서 자신이 소외당하고 피해를 입는 대상이라고 여긴다. 그 때문에 ‘여성 고위직 비율 확대 정책’ 등에 관해 ‘매우 동의-약간 동의-중립-약간 반대-매우 반대’와 같은 식으로 답하는 문항에서 강하게 반대의 뜻을 드러낸다. 심지어 이들은 젠더 이슈에서 반감이 심해도 너무 심해서 ‘남녀의 소득이 비슷한 사회가 공정하다’는 당위적 문항에도 58.3%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할 정도다. 남성이 약자이니 더 우대받아야 한다는 식이다.
“세대론은 반페미니즘 정체성을 작동시키는 중요한 변수다. 20대 남자들은 부모 세대에서 여성 차별이 심각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반페미니즘 정체성 집단조차도 79.2%가 이에 동의한다. 기성세대 남자는 권리를 누렸다. 하지만 20대는 이중으로 권리를 박탈당한다고 이들은 느낀다. 남자의 기득권과 고도성장 세대의 기득권이 동시에 사라진다.” - 본문 127쪽 중에서
책에 따르면, 정부 기관과 같은 권력이 개입해 난민 등 소수자를 돕는 정책에는 남녀 가릴 것 없이 20대 다수가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 또한 페미니즘에 반감을 드러내는 건 30대 남성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비율이 20대 남성처럼 높지는 않았다. 때로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세대와 성별로 나뉜 어느 집단과도 다른 의견이 20대 남성에서만 엿보인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20대 남자>가 담은 조사 결과는 그저 세대론으로 단순화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남자들만의 특징이라고 하기엔 특정 나이대에서만 유난히 극단적인 답변이 나온다는 점도 살펴야 한다. 책에 따르면 ‘젠더’와 ‘권력’이 만나는 지점에서 비뚤어진 공정성 잣대가 나오는데, 이게 ‘20대 남성 현상’의 핵심이다.
‘맥락이 제거된 공정’의 시대
그렇다면 20대 남성들은 그저 논리 없이 강한 여성 혐오를 공유하는 집단인 걸까?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설문 중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지원 정책’과 같은 문항에 ‘반페미니즘 정체성 집단’도 64.0%가 동의했다.
이를테면 이들은 ‘당사자의 노력이 요인으로 작용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외부의 개입이 정당한지 아닌지 따진다는 것이다. 설문 결과를 보면 ‘도움을 받을 자격’에 대해 20대 남녀가 다른 세대보다 깐깐한 편이다. 20대 중 다수, 특히 20대 남성들이 사회구조와 환경의 영향 등 “맥락을 무시하고”, 개인의 능력과 노력만을 두고 공정성 잣대를 들이대는 행태가 포착됐다는 건데, 이에 관해 저자는 “맥락이 제거된 공정”이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해서 ‘이중의 착취’가 발생한다. 기성세대에 의한 착취와 여성에 의한 착취가 동시에 쏟아진다고 느끼는 이들이 강고한 정체성 집단으로 뭉친다. (중략) 이 이중 마이너리티라는 현실에서 기성세대 남성의 점잖은 훈계는 먹혀들지 않는다. 이것은 남녀 갈등인 동시에 세대 갈등이기도 한데, 이 전선에서 기성세대 남성은 애초에 이들의 편이 아니다.” - 본문 130쪽 중에서
이를 '20대 남성의 보수화'라고 해석하기엔, 설문에서 20대 남성들은 정치권 보수진영에 마냥 우호적이지 않았으며 박근혜 탄핵에 관한 문항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성세대를 향한 젊은 세대의 저항이라고 보기엔 남녀가 다소 다른 방향으로 답한 문항이 많았다.
주목할 지점은, 저자들은 특정한 해석을 정해두고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책에서 속 시원하게 드러나는 가설이나 '정답'이라고 할 만한 메시지를 찾기는 어렵다. 과거 천관율 기자는 '일베'를 분석한 데이터 기사로 호평받은 바 있지만, 이번엔 특정 집단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보다 더욱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한 노력이 엿보인다. 20대 남성이라는 집단의 규모가 더 방대한 것도 이유일 듯하다. 특정 논리에 섣불리 조사 결과를 끼워 맞추지 않으려 하면서, 천관율 기자는 "한 세대 이상 중요한 질문이 될 것"이라고 책에 담긴 데이터의 의미를 소개한다.
같은 이유에서, 마치 퍼즐의 몇 조각과 같은 책 <20대 남자>를 청와대 관계자들이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20대 남성의 지지율 급락의 원인을 다채롭게 살펴볼 자료이면서, 동시에 최근 불거진 '공정성 논란'을 두고 정부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책의 취지처럼 '쉽게 진단하고 섣불리 답을 내리려' 하지는 마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