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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Mar 02. 2024

내 연약함을 비웃지 않는 사람들과 살아가자

우울과 불안이 가득했던 삶, 이제는 조금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30대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우울증,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우울증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절의 상처와 트라우마도 몇십 년이 지나서 돌아보게 됐다) 몇 년 동안 상담받으며 내 우울과 불안의 근원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었다.


지난해 말, 2023년 12월에 의사와 상담하에 몇 년 동안 복용했던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단약 했다. 그 뒤로 몇 개월째 약 없이 매일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한때 우울증이 극심해서 평생 없던 불면증까지 몰고 와 수면제 없이 잠을 자던 시기가 마침내 지나갔다.


물론 우울증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기가 ‘한 번 겪으면 다시 오지 않는 과거’가 아니라 ‘정신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벌어지면 돌아올지 모르는 상태’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다만 그걸 극복해 낸 경험은 평생 내 삶에 스며들어있던 절망감을 어느 정도 걷어내는 역할은 했다. 우울이라는 게 반드시 ‘극복’해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과 그러한 경험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우울이나 불안이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걸 모르고 평생 대부분의 시간을 살았다. 내가 우울하고 불안한 것처럼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우울과 불안을 떠안고 사는지 깊게 생각해 볼 여유가 없을 정도였다. 내 우울과 불안을 하루하루 상대하기도 벅찼다.


그런 나날이 우울과 불안을 더 키웠다. 걱정이 들 만한 걸 모조리 제거해서 일상의 모든 부분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어야 불안이 사라질 거라는 헛된 믿음이 커져갔다. 그게 매일 (당연하게도) 실패할 때마다 나를 짓누르는 우울의 무게도 늘어났다. ’그럼 그렇지, 결국 안 되는 구나‘ 하는 생각에.


이제는 우울과 불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오랜 상담 덕분이다. 삶에 걱정스러운 일이 찾아오지 않는 기간은 사실 거의 없고, 우울과 불안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수준에 놓을 수 있다면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까지가 일상이라는 것도.


2021년에는 강아지를 한 마리 입양했고, 이젠 어엿한 가족이 되었다. 반려동물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곧 미리 예상할 수 없는 수많은 사건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과정인 것 같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과정도 마찬가지겠지만, 처음 가까워질 때는 내가 알던 세계가 그를 만나 확장되면서 예상하지 못한 많은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다 점차 그게 익숙해지고 또 자연스러워진다. 서로 이해하며 지내는 나날이 천천히 쌓이다 보면, 함께인 것이 어색해지지 않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강아지가 하는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거나, 내 맘과 달리 이래저래 사고를 칠 때면 불안하고 답답할 때도 있었다. 그걸 돌아보다가, 내가 제어할 수 없는 것들을 제어해 보려고 집착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강아지와 살아가면서 배우는 게 많다.


겁이 많은 강아지를 입양하는 바람에, 뜻밖에 ‘거울치료’ 효과도 얻었다. 반려견 밤이는 겁이 많고 새로운 걸 두려워하는 나와 닮았다. 얘가 저걸 왜 무서워할까, 생각하다 보면 내가 어째서 무언가를 꺼리고 피하고 싶어 했는지 이해하게 되곤 한다.


일상이 크게 변한 건 아닌데도, 요즘처럼 삶이 살 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오는 4월에는 7년 동안 함께한 애인과 결혼하기로 했다. 비록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내가 선택한 가족과 같이 살아간다면 그래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연약함을 비웃거나 약점 삼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자. 비록 몇 명 되지 않더라도. 나를 지키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아직 쉽게 당황하고 사소한 일에 두려워하는 나지만, 조금 더 나은 하루하루를 사랑스러운 존재들과 매일 함께 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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