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세이노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와 <세이노의 가르침>은 개인의 가난에 대해서 전혀 다른 주장을 한다. 한쪽은 가난이 우리의 탓이 아닌 사회 구조의 탓이라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제대로 일하지 않는 개인의 탓이라고 말한다. 독자들에겐 어느 쪽 말이 더 듣기 좋을까?
가난한 쪽이라면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마음의 위안을 얻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쪽이라면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는 아무리 노력해도 끝이 보이지 않고, 도전조차 기회가 주어져야 할 수 있는 청년들에게 위안을 주는 책이다. 역시 내 탓이 아니었어, 기득권에게 유리한 제도로 가득 차 있는 이 사회가 문제였어, 사회부터 바꿔야 해, 라며 화살을 자신이 아닌 외부로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워라밸을 제 1 덕목으로 생각하는 청년들을 고용해야 하는 사장들에게 좋은 책이다. 가난을 개인의 부족한 열정과 노력으로 돌려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직원을 늘려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에 지친 청년들에게 더 노력하면 분명히 빛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가 ‘세상이 거칠고 험하니 다 같이 길을 다듬어보자’라면, <세이노의 가르침>은 ‘세상이 거칠고 험하니 연장 잘 챙겨라’ 정도가 되겠다. 현재 자신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면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채찍질이 필요하다면 <세이노의 가르침>을 추천한다.
부자도 아니고 충분히 가난하지도 않은 데다가 귀까지 얇은 난 두 책을 모두 공감하며 읽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나선 ‘당장 세금을 올리고 우리의 부가 지금보단 균등하게 돌아가게 해야 해. 지금 그런 주장을 하는 대선 후보엔 누가 있지?’라며 사회제도와 정치에 관심을 가졌고,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고 나선 ‘나는 지금 학교가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일하기 싫다고 뺀질뺀질 평교사에 머물며 눈 감고, 귀 막으며 스스로를 부품 취급하고 있는 건 아니야?’라며 자신의 나태함에 혀를 찼다.
이처럼 같은 사회에 대한 상반된 주장을 비교하며 읽고 싶다면 이 두 책을 연달아 읽을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