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희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마흔에 읽는 니체>.
최근에 읽은 마흔 시리즈다. 마흔이 어떤 나이기에 이토록 마흔을 제목으로 거는 책들이 많을까.
서른을 전후해서 직장을 구했다면 마흔쯤엔 회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랐을 것이다. 중간 관리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중간 관리자는 위아래로 치이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사회 초년생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책임감과 압박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아랫사람까지 잘 가르쳐 실수를 줄여야 한다. 그들의 실수가 나의 책임이 되기 때문이다. 내 몫을 다 하면서 회사가 돌아가는 구조를 파악하고 아랫사람을 관리하다 보면 정신없이 하루가 끝난다. 그리고 그 일을 내일 또 해야 한다.
막중한 책임감은 회사에서만 주어지는 게 아니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숨만 쉬어도 생기는 빨래, 설거지, 쓰레기는 회사와 달리 주말까지 쏟아진다.
엄마만 찾는 아이는 또 어떻고. 때 되면 밥 차려 주고,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친구 관계는 괜찮은지, 아픈 곳은 없는지 확인하다 보면 내 몸은 돌볼 시간이 없다. 남편도 뒷전이다.
집안일은 집 밖에서까지 쏟아진다. 연로해진 부모님까지 챙겨야 하는 나이가 마흔이다.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기 벅차신 부모님은 밥솥 하나를 사더라도 자식부터 찾는다. 부모님이 원하는 물건들을 사드리고,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 드리고, 아플 때 간병까지 하다 보면 내 시간은 더 이상 내 시간이 아니게 된다.
이렇게 회사에서, 가정에서 시간을 도둑맞다 보면 나는 사람인가, 노동력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 언제쯤 내 인생을 살 수 있는지 하는 고민들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마흔’을 제목으로 건 책들은 대부분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마흔의 입장에서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는 책이 많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마흔의 고통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원래 그런 시기라는 것이다. 원래 그런 시기이니 포기하고 매일을 한숨 속에서 살아야 할까?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라는 책에선 이 시기에 내 그릇을 키우라고 한다. 그동안 내 한 몸만 실으면 됐던 조각배에서 벗어나 여러 사람을 실을 수 있는 큰 배를 만들라는 것이다. 아니, 불평 불만하며 버티기도 힘든데 기꺼이 배를 크게 만들라고?
유감스럽게도, 그렇다. 놀랍게도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이 기껍게 느껴졌다. 어차피 해야 될 일이라면 나를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이 시간을 보내면 좋지 않겠는가. 누군가를 돌본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지만 나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하면 힘이 난다.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다. 물론 나를 바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나를 바꾸는 것도 힘든데 남을, 회사를, 세상을 바꾸는 건 더 힘든 일 아니겠는가?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는 이렇게 나를 바꾸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책의 기본 틀은 엄마가 딸에게 쓰는 편지이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딸에게 자신의 인생과 자신이 상담했던 환자들의 경험을 들려주며 위로를 건네는 것이다. 딸을 생각하는 엄마의 진실된 마음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전문 지식이 더해진 책은 덤덤하면서도 따뜻한 위로가 된다. 인생에서 벅찬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그런 자신에게 위로를 보내고 이 시기를 현명하게 보내고 싶다면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라는 책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