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한강의 소설 속 인물들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상처가 있고, 에너지를 외부로 발산하기보다는 내면으로 파고들며, 외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아파하면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이처럼 연약하지만 무너지지 않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음으로써 한강의 소설은 고통의 소설이자 회복의 소설이 된다.
‘희랍어 시간’의 두 주인공은 각각 시력과 언어를 잃어가며 세상과 단절되는 고통을 겪고 있다. 남자는 어려서부터 눈이 좋지 않아 자신이 언젠간 실명될 것을 알고 있었고, 현재도 특수한 안경 없이는 앞을 거의 보지 못한다. 여자는 여러 힘든 사건들을 겪은 이후 스스로 입을 닫았고, 언어를 회복하기 위해 남자가 강의하는 희랍어 수업을 듣게 된다.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던 두 남녀의 거리가 가까워진 것은 남자가 안경을 깨뜨리고 나서부터다. 눈을 잃은 남자를 위해 여자는 기꺼이 다가간다. 치료를 도와주고, 집에 데려다주고, 밤새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함께 있는 동안 남자는 질문하고, 여자는 답하지 못한다. 여자는 남자를 응시하고, 남자는 눈을 맞추지 못한다. 그렇게 소통하지 못하던 둘은 시간이 지나 방법을 찾아낸다. 여자가 인기척을 내주고, 남자의 손바닥에 글을 써줌으로써.
마침내 함께 밤을 보낸 후 둘은 각자의 두려움을 마주한다. 남자는 어둠을 맞이하고 여자는 소리를 냄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이전까지와 다른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관심을 두었던 인물은 여자였다. 어쩌다 말을 잃게 되었을까,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어떤 아픔을 견뎠을까, 그녀를 다시 살아가게 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여자의 삶은 회상을 통해 파편적으로 드러난다. 어릴 적 태어나지도 못했을 뻔한 이야기, 이혼 후 양육권을 빼앗긴 이야기, 말을 잃고 직장을 잃게 된 이야기 같은 것들이 바람에 팔랑거리는 책장처럼 조금씩 엿보이는 것이다.
여자의 삶을 정확히 알긴 힘들어도 그녀에게 세상은 상당히 날카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태어나는 과정부터 큰 위험이 있었고 거기에 주변의 고통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예민한 기질까지 있었으니. 책에 쓰여진 것처럼 그녀에게 세상은 ‘화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등 돌릴밖에.
그랬던 그녀가 다시 세상과 소통하게 된 것은 남자와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난 이후였다. 여전히 폭력적인 세상임에도 그녀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세상속으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다시 입을 열게 된 그녀가 하게 될 행동은 치열하면서도 따뜻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