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밀란 쿤데라
독서 순서로 따지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은 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었다. 처음엔 두 책의 공통점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 읽어갈 즈음에 <채식주의자>와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이번 글에선 두 책의 공통점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려 한다.
두 소설의 주인공 모두 외부로부터 억압을 받고 있으며, 억압으로부터 저항한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는 어느 날 꿈을 꾼 이후로 육식을 거부한다. 조용히 채식을 이어가는 영혜에게 주변은 끊임없이 육식할 것을 강제한다. 몸을 붙잡고 고기를 억지로 먹이려 한다거나 뺨을 때리는 등 폭력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결국 이 일로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주인공 ‘토마시’ 역시 외압을 받는다. 사회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신문에 싣게 되는데 이 때문에 근무하던 병원에서 압력을 받게 된다. 병원장의 신임을 받고 있고, 실력도 좋아 앞날이 창창한데 글 하나 때문에 인생을 망쳐서야 되겠냐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비공식적으로 해당 의견을 철회하겠다는 문서를 작성한다면 그 글을 어디에도 공지하지 않고, 나중에 국가로부터 병원이 압력을 받을 때(여기서 말하는 압력은 그런 의사를 왜 계속 가만히 두냐는 압력을 말한다) 면피용만 쓸 것이라고 회유한다. 하지만 토마시는 끝까지 거부하고 결국 의사직에서 물러나 유리창 청소부가 된다.
위 사례에서 보았듯, 두 주인공 모두 자신의 자유를 위해 행동했다. 다소 고집스럽긴 해도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 자신의 신념대로 우직하게 행동한다는 점 때문에 나는 이 둘을 응원했다. 하지만 이내 둘의 행동이 점차 심화되는 것을 보며 나는 당황하게 된다.
먼저 <채식주의자>의 영혜는 나로서는 쉽게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한다. 억지로 고기를 먹을 바에는 죽는 게 낫다며 자신의 손목을 긋는다던가, 답답하다며 속옷을 포함한 상의를 모두 벗은 채 사람들이 다니는 길 한복판에 앉아 있는다던가, 온몸에 꽃과 잎을 그리고 형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토마시가 보였던 행동 역시 내게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토마시가 사회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쓰고, 그에 따른 국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의사직을 포기했을 땐 ‘신념이 굳건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에 정권에 저항하는 행동을 했다가 감옥에 갇힌 지식인들을 풀어주는 서명 운동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이를 거절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토마시는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에 저항한 것이 아닌 개인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 모든 행동을 억압으로 보고, 그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길 원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영혜의 행동과도 비슷한 모습이 있다.
영혜가 억압과 맞닥뜨릴 때마다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왜 안 돼?”였다. 왜 육식을 거부하면 안 돼? 왜 사람들이 다니는 길 한복판에서 옷을 벗고 있으면 안 돼? 왜 음식을 거부하면 안 돼? 이처럼 영혜가 원하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은 노력하면 이해할 수 있는 것에서 노력해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으로 점차 옮겨간다. 계속 음식을 거부하면 죽게 될 텐데 어떤 가족이 그 모습을 그대로 두고 본단 말인가?
개인이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두 인물이 던지는 메시지는 지금의 내게 꽤 의미 있는 메시지를 주었다.
첫째로, 내 주변엔 어떤 억압이 있고, 나는 얼마나 저항하고 있는가에 대한 메시지이다.
딸로서, 아내로서, 직업인으로서 가지는 억압들. 부모님께서는 내가 자녀를 낳길 원하시고, 남편은 내가 함께 교회에 다니길 원하며, 국가는 내가 저비용 고효율의 공무원이길 원한다. 나는 이러한 억압들을 시시때때로 느끼고 있으며 이러한 억압들에 대하여 친구들에게 투덜거리는 정도의 소극적인 저항만 하고 있다.
둘째로, 내가 억압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억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에 대한 메시지이다.
태어날 때부터 받았던 억압이라 내 몸을 누르는 공기처럼 불편함조차 느끼지 못하는 억압들. 내가 느끼는 감정, 내 삶의 목표, 나의 취향과 같은 것들이 정말 온전히 나의 의지로 이루어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사회가 상식이라는 것을 만들고, 그 상식이 개인을 통제하고 억압한다면 내가 하는 생각과 내가 갖는 감정이 결코 자유로운 것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비교해야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 역시 누군가를 억압하고 있진 않나에 대한 메시지이다.
나의 경우엔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메시지가 상당히 중요하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아이들을 교양 있는 사회인으로 다듬기 위해선 통제와 억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통제와 억압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느냐는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급식 시간을 예로 들면, 다른 사람의 식판을 엎거나 다른 사람의 식판에 침을 뱉는 것은 당연히 통제해야 할 행동이다. 밥을 먹는 중에 돌아다니거나 손으로 밥을 뜯어 먹는 것 역시 통제하는 편이다. 하지만 편식을 하거나, 음식을 독특한 방식으로 먹는 것(국에 밥과 나물, 김치를 전부 섞어서 숟가락으로 퍼먹는 것 등), 그 외 젓가락을 안 쓰고 숟가락으로만 먹는 것 등 사소한 부분으로 갈수록 그 부분을 통제할지 말지는 상당한 내적 갈등을 유발한다.
이처럼 두 책은 내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억압에 대해 고찰해 볼 기회를 제공했다. 물론 각각의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보다 다양하겠지만 두 책을 묶어서 보았을 때 내가 발견한 가치는 억압이었다.
이어지는 독서 일기에서는 ‘억압’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강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와 다른 책 한 권을 비교 감상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