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기묘하게 이어진 책이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주인공 경하는 마치 작가 자신처럼 그려진다. 경하의 직업이 작가라서인 것도 있지만 그녀가 이전에 쓴 소설이 광주 민주화운동에 관한 소설이었다는 점, 그녀가 소설을 쓰면서 느낀 고통으로 인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괴로워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느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소년이 온다>를 읽은 직후 <작별하지 않는다>를 연달아 읽은 나는 이 책이 수필인지 소설인지 확인하기 위해 소설 앞장을 몇 번이나 살폈었다. 해당 인물이 ‘경하’라고 불리고 나서야 나는 이 인물이 ‘한강’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한강은 왜 독자가 헷갈릴 정도로 자신과 비슷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일까? 난 그에 대한 답을 소설의 불친절함에서 찾아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년이 온다>와 달리 학살에 대한 내용을 전면으로 다루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는 주인공이 1980년 5월, 광주에서 겪은 일을 생생하게 현재형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이야기 전체가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작별하지 않는다>는 인선이라는 인물이 할머니를 통해 들은 이야기를 다시 경하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보여준다. 이로 인해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다루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내용이 한참 후에, 그것도 할머니에게 들은 내용을 다시 친구에게 전달받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그것도 소설에서는 제주 4‧3 사건에 대한 내용이 아주 약간만 들어있을 뿐이다.
학살로 인해 고통받은 인물을 선정하는 방식에도 차이점이 있다. <소년이 온다>는 학살의 내용을 다룰 때 학살되어 죽은 사람들이나 고문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루어진다. 죽은 사람들이 있었던 현장과 그때의 상황이 모두 다루어지고, 고문받은 사람들의 고문 내용, 고문받은 이후에 망가진 삶까지 모두 보여준다. 하지만 <작별하지 않는다>는 직접적인 학살을 피한 사람들, 예를 들어 군경의 가족이거나 운 좋게 학살의 순간에 다른 곳에 있어서 화를 면한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학살 사건을 보여준다. 생생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연출임에도 화를 면한 사람들조차 평생을 고통 속에 사는 모습을 통해 <소년이 온다>보다 해당 사건이 더욱 끔찍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작가는 작품의 주제인 제주 4‧3 사건을 여러 겹으로 숨겨 놓았다. 해당 사건을 보여주더라도 몇 발자국 떨어져서 희미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과 닮은 인물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나는 그 이유를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의 의도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데에 있다고 본다. 작가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 나옴으로써 그녀가 겪는 모든 일을 작가의 의도로 보고 숨겨진 내용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내가 생각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제주 4‧3 사건은 끔찍한 역사이며, 우리는 그것을 잊어선 안 된다. 이 부분은 경하의 친구인 인선이 절단된 손가락을 다시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인선은 자신의 손가락이 잘렸을 때 학살 받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자신은 손가락이 잘린 것만으로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그보다 심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떠올린다. 이러한 연출로 인해 독자는 인선의 상처와 학살의 역사를 연결 짓게 된다.
이어서 인선이 절단된 손가락을 이어 붙이는 치료를 받는 장면을 보여준다. 봉합 후 3분마다 상처 부위를 찔러 피를 내고 통증을 느끼게 해야 신경을 살릴 수 있다는 게 그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환자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봉합을 포기한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제주 4‧3 사건을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으며, 아픈 역사가 잊혀지기 전에 고통스러울지라도 계속해서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고통스럽다고 하여 그 역사들을 모른 척 살아간다는 것은 내 몸을 잘라내는 것과 같은 것이고, 이는 결국 온전한 내가 아니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표지는 언뜻 평화로워 보인다. 깨끗한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 수평선 위로 섬처럼 넓게 펼쳐진 흰 천. 하지만 그 천이 걷어진 후에도, 가려진 것이 드러난 후에도 평화로워 보일 수 있을까. 나는 이 표지가 진실된 역사를 보려하지 않는 독자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나와 멀리 떨어져 있고 괜찮아보이니 그대로 방치하려는 태도를 시각적으로 보여준 사진이라고 말이다.
표지는 역사를 대하는 독자의 태도 말고도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암시한다. 이야기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처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방식 말이다.
작가가 제주 4‧3 사건의 생생한 내용을 감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것을 소설의 한계에서 찾았다. 아무리 생생하게 전달하더라도 소설로는 모든 것을 전달할 수는 없다. 출판되는 책은, 특히 불특정 다수가 읽게 되는 소설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내용이 잔인하여 누군가에게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소설 속에서 제주 4‧3 사건에 대한 자료를 보던 인선은 몸이 찢긴 사람을 본 순간 자신의 영혼이 부서졌다고 표현했다. 나는 이것이 작가의 경험을 반영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이것 말고도 학살의 내용은 여러 이유로 희석되어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희석된 사실은 더 이상 사실일 수 없을 테고,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역사는, 특히 아픈 역사는 사실에 가깝게 전달되어야 할 것이기에.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작가는 바로 다음 장에 자신이 참고한 자료들을 배치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사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독자들은 스스로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도록. 그리하여 희석되지 않은 진실을 확인할 수 있도록. 나는 이러한 배치가 역사를 사실에 가깝게 전달하고 싶은 작가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위에 적은 내용 말고도 여러 가지 시적인 표현, 상징적인 표현들이 책 전체에 고루 스며들어 있다. 한 번에 모든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렵고 여러 번 읽어야 보이는 부분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분들이라면 <소년이 온다>를 읽은 후에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