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자 여보!
어느새 9번째를 맞는 결혼기념일이다. 함께 살아온 시간의 반은 우리 둘이, 반은 아이 둘 육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날들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나는 과순이를 시작으로 일을 쉬어본 적이 없다. 결혼하고 잠시 임용고시를 보겠다고 수험생을 자처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아르바이트든 풀타임 근무든 꾸준히 일을 하며 지냈다.
그런 일쟁이가 육아에 전념하겠다고 사직서를 내겠다 작심했을 때, 나는 내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다른 집 아이 돌보기는 쉬워도 내 새끼 돌보는 건 너무나 힘든 싸움이었다. 체력도 바닥, 내 인간성도 바닥.
무엇보다 힘든 건 내 시간이 사라지는 걸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자유의 몸일 때는 자기 계발을 하지도 않았으면서 막상 출산하고 육아로 갇히게 되니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이 천지였다. 일을 놓아 버리니 앞으로도 영영 내 일을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마치 두더지처럼 불안과 조급함이 나타났다 들어갔다, 온전히 육아에만 집중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올해를 시작하며 벌써 5년의 육아가 지나갔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5년도 금방이겠지, 그 이후엔 아이들이 나를 찾는 시간이 줄어들겠지 생각하니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육아’라며 다시 초심을 끌어왔다.
그래놓고선. 야근하고 일로 인정받는 남편을 보면 부럽고 짜증날만큼 얄밉기도 했다. 그가 받는 스트레스보다 그가 느끼는 성취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그러니 더 피해의식만 생겨갔다.
내가 기대한 만큼 일찍 오지 않거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주지 않으면 혼자 입에서 이ㅅㄲ 저ㅅㄲ가 나왔다. 아이들이 6살, 4살인 지금 이 시기가 제일 많이 싸울 때라던데. 그래서 그런가, 압이 계속 차올랐다. 남편도 마찬가지었을 거고.
그러다 지난주 친한 언니들에게서 연속으로 메시지를 받았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남편의 표정이, 지금 다시 사진으로 보면 너무 슬퍼 보인다고. 맨날 찌들어 있는 자신의 눈치를 보느라 힘들었을 것 같다고. 이 얘기를 듣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는데 바로 다음 날 다른 언니 부부를 만나다 또 와닿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부가 경쟁구도가 되면 안 된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날 이후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 또한 이번 연휴 내내 가족들에게 헌신했다. 내가 그에게 숨통의 바통을 건네니 그도 숨을 고르고 나도 조금씩 숨이 쉬어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틈이고 숨구멍이었다. 일부러라도 더 길게 호흡을 내뱉어본다.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닌데 뭐가 그리 조급하고 완벽해지고 싶었을까. 결혼기념일을 축복하며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주셨던 것 같다.
오늘 새벽, 남편에게 미리 준비했던 카드에 편지를 쓰고 밖으로 나왔다. 새 마음으로 9주년 결혼기념일에 나를 위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나를 위한 길이 너를 위한 길이 되고, 너를 위하는 길이 나를 위하는 길이 되길 바라며. 오늘 우리는 서로를 축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