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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처박아버린 생일케이크

내가 남편을 위로해 줄 수 있다면

by 반짝이는 루작가

내 생일날 아침,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지만 전날 빵집에서 사 온 치즈 카스텔라가 네모반듯하니 케이크처럼 생겨 스스로 초를 꽂고 가족들에게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게 했다.


남편은 미안해했지만 전혀 그럴 필요 없다고, 그냥 애들이 촛불 부는 걸 좋아하니 했을 뿐이라고 했다.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하루를 즐겁게 시작했다.


그러나 ‘혹시 오늘 일찍 퇴근하려나? 서프라이즈가 있으려나?’ 생각했던 나.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생각을 잠재우고 싶었지만 워낙 이벤트쟁이였던 남편 덕분에 나도 그에 맞게 받기만 하는 아내가 되어버렸다.


오후 5시가 넘도록 연락이 없어 전화를 해보니 늦을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하는 남편이었다. 내일부터 회사 행사가 있어 야근일 거라 생각은 했지만 아무 연락이 없어 설마 하며 전화를 했던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아 창피하고 짜증이 났다. “미리 연락 좀 해 주지!”


아이들과 우당탕탕 하루를 마무리하고 세수를 하는데 번호키 소리가 들렸다. 8시 30분이 넘은 시각, 생각보다 빨리 퇴근한 남편이 반가웠다. 그런데 그의 손에 들고 있는 케이크가 왜 그리 싫었을까. 뭐라 입에 발린 멘트를 건넸는데 그 말도 듣기 싫고, 이 밤에 정리 다 했는데 또 생일파티 하기도 싫고, 이거 사 올 돈이면 아끼지! 이거 사 올 시간이면 차라리 10분이라도 더 빨리 들어오지! 하며 내 마음속에 이상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멋쩍어하는 남편의 표정은 보이지 않고 그냥 그대로 케이크를 냉장고에 처박아버렸다.


남편의 반성문 같은 축하 카드를 읽고선, “카드는 고마운데 현물은 어딨 어요? 내 노트북 파우치 사준다면서~~!!”하고 따졌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돈만 밝히고 낭만 제로인 영락없는 아줌마가 되어버렸는지 답답했다. (현실을 너무 현실로 살아가는 거 아니니 루씨야. 후 ㅠㅠ)


오늘 새벽 남편이 둘째의 기저귀를 확인하는 부스럭 소리에 잠이 깼다. 시간을 보니 새벽 4:15. 또 일하다 잠들다 잠과 일과 사투를 벌이는 남편을 보니 괜히 짠한 마음이 들었다. 방에 누웠다 다시 나가는 남편이 냉장고에서 뭔가를 막 꺼내더니 사과를 먹는 것 같았다. 그 비닐 소리 때문이었는지 둘째가 깼는데 쉬를 어마장장 하며 기저귀가 샜고 요가 물웅덩이처럼 난리가 났다.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고 같이 처리해 다시 잠을 자는 데 남편에게 물었다.


“어제 밖에서 저녁 안 먹고 들어왔어요?“

“네”

“... 어휴, 고생이 많다 정말.”


자려고 누웠는데 너무 허기가 졌다는 말에 문득 냉장고에 넣어버린 케이크 생각이 났다. 어제 내가 조금만 더 마음을 열었다면, 밥은 먹고 왔냐고 한마디라도 남편에게 던졌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미웠던 남편인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 시간 넘게 안 자는 아이를 겨우 재우고 거실로 나왔다. 식탁 위에 ‘품위유지비’라고 적힌 봉투에 남편이 꾸며놓은 ‘루치아내님 탄신일 기념, 외박 가능 쿠폰’과 현금이 들어있었다. 나는 결국 이렇게 받기만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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