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와 거리두기

Far Far Away - John segal

by 반짝이는 루작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처음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그림과 내용으로 선택한 책이었다. 그러나 엄마를 떠나 살겠다는, 멀리멀리 가버리겠다는 아이의 마음이 왜 꼭 내 마음 같았을까.



그래서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적부터 대화가 잘 통했던 것도 엄마보다는 아빠였다. 엄마와 진지하게 나의 진로나 꿈에 대해서 얘기해 본 적도, 나의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 얘기해 본 적도 없었다. 시내에서 태어나고 자라신 아빠와는 달리 엄마는 촌에서 태어나 무뚝뚝하고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르셨다.


그래도 마음은 세상 누구보다 넓으셨고, 자식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더욱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출산 후 365일 중에 300일 이상은 엄마와 붙어 지내며 엄마와의 관계가 힘들어졌다.


처음에는 집에 와서 밥 해주시고 아이를 돌봐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엄마가 집에 오시는 게 힘이 아니라 짐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 달 전부터 첫째가 나와 엄마의 관계를 눈치 보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 아빠의 불화 속에서 커온 나는 절대 내 자식들에게는 그 불안감을 주지 말아야지 했는데, 남편과의 관계가 아닌 친정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아이들에게 불안을 심어주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아이들은 특히 첫째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 같은 할머니가 싫고 안 왔으면 좋은 마음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럼 왜 엄마와 이런 관계가 되어버렸을까.


집에 오시면 모든 걸 다 나에게 맡기고 그저 아이들과 놀아주시기만 하는 아빠와는 달리, 하나부터 열 가지 엄마가 하는 잔소리는 듣기 싫었다. 그렇게 설거지를 하지 마시라 해도, 내 부엌살림을 건드리는 불편함, 아이들을 훈육할 때는 옆에서 말리는 시누이처럼 콩이여 팥이여 하는 엄마의 모습이 얄미웠다.


그런데도 엄마께 무조건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우리 집까지 와서 헌신해 주는 엄마께 투정 부리는 나는 아주 못됐고 복에 겨운 아이라며 항상 나를 채찍질하기만 했다. 엄마께 내가 화를 내야 하는 이유가 정당하지 않았기에 나는 늘 속으로 삭여야 했고, 참아야 했고, 그러다 욱하게 화를 냈을 때는 반성의 편지를 써야 했었다.


이렇게 5년을 보냈다.


지난 6월 초에 마리아학교를 다녀오며 다시 한번 성찰하고 엄마께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주시는 엄마를 진심으로 환영하겠다며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봉사자로 특수 돌봄 일을 하시는 엄마가 대단하고 존경스러워 엄마께 문자로 ‘엄마는 정말 자부심을 가지셔야 한다. 엄마같이 위대한 일을 하시는 분들께 쥐꼬리만 한 돈만 주면 안 된다.’ 고 엄마를 치켜세워드렸었다. 그러나 그날 오후에 잠깐 우리 집에 들르신 엄마의 한마디에 나는 이제 더 이상 엄마께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무사 이제까지 쥐꼬리만큼 받는 거 몰라서?!”

(왜, 이제까지 내가 쥐꼬리만큼 받는 거 몰랐니?)


그날 엄마가 나가시고 혼자 펑펑 울었다. 어쩜 이렇게도 핀트가 맞지 않는지. 노력하면 할수록 꼬이는 엄마와의 관계가 너무 힘들었다. 나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들. 항상 감정 쓰레기통처럼 엄마의 화를 받아줘야 하고, 엄마 말투에 상처받는 내 자신이 안쓰러우면서도 엄마한테 아무 말도 못 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방법은 물리적 거리밖에 없다고 느꼈다. 그런데 650m 거리에 사는 엄마께 갑자기 이제부터 집에 오지 마세요라고 할 수도 없는 법. 차라리 착한 딸의 콤플렉스를 벗어던지자고 그냥 나는 내 에너지가 닿는 범위만 챙기기 시작했다. 애들 챙기기도 힘든데 같은 시간에 엄마까지 돌볼 힘이 없었다. 같이 있어도 엄마의 얼굴은 거의 쳐다보지 않았고, 필요한 대화가 아니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역시, 이렇게 마음을 먹어봤자 에너지가 쓰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눈치를 채신 건지 어제는 엄마가 아무 연락도 없이 집에 오시지 않았다.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림책의 아기 돼지는 엄마 멀리 떨어져 가봤자 고생인 걸 알고 엄마의 사랑 가득한 케이크를 먹으며 붙어있는데, 나는 어찌 풀어가야 하는 걸까.


엄마와의 대화가 가장 어려웠던 터라, 대화로 풀 자신이 없다. 편지도 반성문처럼 수없이 썼었기에 더 이상 써 내려갈 말이 없다. 내일은 첫째 생일파티로 가족들이 다 모일텐데 엄마를 반갑게 만날 수 있을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의 거리 두기란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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