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 예수님이 계셨음을 알아차리기
내일이 방학식이라 오늘은 아이들에게 영화시청을 허락하신 담임 선생님. 그 덕에 나는 맨뒤에 앉아 밀렸던 일기를 쓰며 나를 돌아보는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도 나를 위한 예쁜 원피스를 입었음^^)
퇴근하고 바로 해안동으로 달려가 몇 달 만에 애정하는 신부님과 언니들을 만났다. 아랫마을이 화창하게 다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서 맛있는 오찬을 즐기며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순식간에 시간은 흘러갔지만 마지막까지 신부님과 언니들을 붙잡으며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엄마와의 관계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언니들의 이런저런 조언까지 다 듣더니 신부님께서 말씀을 해주셨다.
"자매님들이 얘기해 주신 방법들도 좋지만, 표면적인 해결방법들이기도 하고요. 사실 그 당시 루치아 자매의 심정이 어땠는지 돌아보고, 들어주고, 보듬어주는 시간이 필요해요. 거기서 멈추면 자기 연민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에 꼭 그다음에는 그 상황에서 예수님이 어디에 계셨는지, 어떻게 나와 함께 있었는지를 알아차리면 훨씬 치유가 빨리 될 수 있어요. 그런 작업을 하고 엄마를 바라보면 나에게 상처를 준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 않고 준비 없이 대화를 시작하다 보면 오히려 더 서로에게 상처가 될지도 몰라요. 예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나를 안아주고, 조금이라도 평화를 찾으면 엄마를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질 거예요. 그런 모습을 아이들도 느낄 겁니다."
그동안 나는 자기 연민에 빠져 그저 엄마가 미울 뿐이었다. 그렇게 밖에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못 했고, 아빠랑 싸우고 소리치고 불안과 공포를 줬던 어린 시절 엄마의 말들과 태도를 증오하고 있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 엄마가 되어서도 집에 자주 오시며 아이들 앞에서 잔소리하고, 말을 예쁘게 하지 않는 모습들이 너무 싫었다. 피하고 싶고, 멀리하고 싶고.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이제까지 거의 매일을 일상처럼 우리 집에 드나들게 해 놓곤 이제 와서 오지 말라 얘기도 못 하겠더라. 나 혼자만 끙끙댔지만 아마 엄마도 눈치로,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나의 감정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러나 대화로 풀 자신은 없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없었기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신부님 덕분에 핵심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종교가 있어 그렇지 않은 분들이 보면 반감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내 인생의 핵심 또한 예수님이어야 함을 깨달았다. 아침 운동을 하며 매일 묵주알을 굴린다. 오늘부터는 기도 안에서 떠오르는 나의 어린 시절을 하나하나 짚으며 돌봐주어야겠다. 옹기장이가 도자기를 빚듯 뭉그러진 나의 마음을 살살 어루만져 주어야겠다. 내 안의 상처들이 진정 치유될 수 있길,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편안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