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의 혼란
원래는 이 글을 쓸 게 아니었다. '엄마의 마음가계부' 기록을 시작하고 싶었는데 아침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고 있어서였다.
지난 토요일 저녁, 평범한 기적님이 모신 권지영 작가님의 북토크가 진행되었다. 청소년 소설인 <행복동 타임캡슐>을 출간한 작가님. 그분의 첫 책인 <꿈세권에 집을 짓다>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반가운 마음이 몇 배 이상이었다. 에세이를 쓰시던 분이 어떻게 소설을 쓰시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언젠가 나도 소설을 써보고 싶은 생각을 마음 한편에 두었던 터라 남편 찬스가 주어지자마자 바로 북토크를 신청했다.
내게 영감을 준 말씀들은 매우 많았지만, 그중 계속 마음을 울리는 것은 정체성이었다. 작가님에게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힘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었다. "나는 쓰는 사람이니까 쓴다."
그 한마디가 내게도 동기부여가 되었고 나 역시 이 길을 걸어가고 있음에 무척 기뻤다. 앞으로도 계속 작가님과 북토크에 참여하신 글 쓰는 분들과 함께 나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왜 한쪽에선 무거운 마음이 들고 있었을까.
철저히 고독하게 책 읽고 글을 쓰겠다고 한 하반기의 시작을 보니 오프라인 모임은 거의 줄었지만 온라인으로는 엄청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웃들 블로그에 들어가 글을 읽고 소통하는 시간이 즐겁고 진심이었다. 그러나 점점 거기에 쏟는 비중이 커지고 있었고, 실질적으로 다지려 했던 내실은 못 채우고 있었다. 온라인을 통해서 알게 되는 정보와 지혜, 선한 이웃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에 마음을 뺏겨 버린 것이다. 시간까지도.
그래서 작가님께 여쭈었다. 매일 새벽 혼자 글을 쓰며 걷는 길이 외롭지는 않으신지. 오히려 고독을 택하고 묵묵히 나아가시는 작가님의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작가님은 에세이 쪽은 작가 브랜드 파워가 필요하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열심히 공모전에 글을 보내고 소설을 쓰는 데 몰입하고 계셨다. 현직의 일도 해야 하고,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도 살아내야 하고, 글도 써야 했기에 이웃관리는 어려웠다고 하셨다. 선택과 집중을 하신 권지영 작가님.
작가님의 삶이 급 부러웠다. 나도 그냥 다 접어버리고 싶었다. 순수하게 글이 좋아 쓰기 시작한 마음이 언젠가부턴 써야 하고 해야 하는 글이 되는 것 같았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 시작한 블로그와 브런치, 공동체와 모임들. 그렇다고 정말 다 버리고 산으로 들어갈 용기도 없는 나인걸 알기에 아침이 울적했다.
그래도 이 마음을 글로 쓰고 싶어 로그인을 했는데, 카페에 남겼던 내 글에 달린 댓글을 보았다.
"언니의 진심이 담긴 새벽글, 온 마음을 다해 쓰신 만큼 열심히 읽은 1인입니다^^ 저도 글쓰기에 진심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 언니의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았고요. 우리 계속 아새하며, 진심을 다해 글 쓰며 만나요~~"
나를 향해 진심인 언니의 응원에 갑자기 힘이 났다. 그런데다 새벽 포스팅에 나를 좋아하는 동생이라며 언급해 준 또 다른 이웃 언니의 글을 읽었다. 언니가 나를 생각하면서 골랐고 챙겨주셨을 책 선물과 그 마음에 그만 또 눈물이 나고 말았다. 과연 내가 원하는 길이 모든 이웃과 사람들을 다 끊고, 혼자만 글을 쓰며 가는 길이었을까.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나의 정체성을 단번에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게 요즘 나의 삶인 것 같다. 이 것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속도와 방향을 믿고 내 인생을 아껴주고 사랑해 주기로. 두려움이 밀려오면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여유 있게 적응해 가는 연습을 하면서. 머리와 마음이 복잡해질 때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보자.
내게 힘과 용기를 주시는 이웃들, 언니들이 떠오른다. 앞으로도 이렇게 사랑을 나누며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루씨로 살아가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진심을 주고받는 삶 그리고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