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며 내 마음 돌보기
2주 전, 둘찌가 장염으로 고생했다. 먹는 것과 약 복용 시간을 철저히 지켜야 했던 장염은 나와 아이를 둘 다 힘들게 했다. 며칠 동안 집에만 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다시 등원을 시작했다. 그날 저녁, 뭉친 어깨에 파스를 붙이는데 첫찌가 내게 말을 한다.
"엄마, 나 배가 조금 아파."
하. 무사히 장염이 지나가나 했더니 결국 바이러스가 첫찌에게 옮기고 말았다. 다음날 부랴부랴 소아과를 데려가 진료를 받고 나름 일주일 동안 쌓인 노하우로 식단을 조절하고 절식 패턴을 이어갔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못 먹는 첫찌가 주말 동안 속상한 마음을 울부짖었다.
"왜! 왜 나는! 꿀물도 안 주고! 과자도 못 먹고..!!"
"첫찌야, 둘찌가 아팠을 때 기억나? 둘찌가 보면 속상해하니까 엄마가 몰래 너만 먹으라고 요플레도 챙겨주고 과자도 줬었잖아. 그런데 지금 네가 아플 때는 둘찌도 옆에서 형아랑 먹고 싶은 거 참으며 지내는 거 보이지? 바나나 똥이 나올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이 말에 첫찌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2주 내내 질리게 차려진 된장국에 다시 밥을 적셔 먹었다.
자기가 놀고 싶은 장난감을 상대가 먼저 갖고 놀고 있을 때도, 엄마가 나부터 책을 읽어줬으면 좋겠는데 순서를 기다려야 할 때도 조금씩 역지사지의 마음을 배워가는 아이들이다. 나 또한 속상해하는 아이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고 상대 아이도 상처받지 않게 문제상황이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부부에게도 역지사지하는 마음은 중요하다. 남편은 주로 저녁약속이 생기면 다음에는 나도 혼자 나가서 즐거운 시간을 갖고 올 수 있는 찬스를 준다. 그게 본인의 의지였든, 회식이었든. 그 마음이 고마워 나도 남편에게 새벽에는 내가 아이들을 보고 운동을 하고 올 수 있도록 배려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게 너무 힘들었다. 친정엄마가 많이 도와주시지만, 예민한 남자아이 둘을 키우며 혼자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게 두려웠다. 나는 왜 그토록 힘들었을까. 왜 그렇게 억울했을까. 지금은 육아에 전념해야 할 때임을 알고 사직을 택했으면서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원망스러운 이중적인 감정들이 올라왔다. 몸도 힘들었지만 마음이 많이 우울했던 것 같다. '라떼는 그런 게 어딨냐'라고 한다면 각자의 삶은 모두 다른 것이기에 대꾸하고 싶지도 않다.
이제는 아이들도 크는지 남편이 가끔씩 '출장을 가야 한다', '회식이 있다'라고 얘기할 때마다 그렇게 힘들지 않다. 쿨하게 보내주려 노력 중이다. 회사일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늘 미안해하는 남편이라 그 마음이 고마울 뿐이다.
그러나 최근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아프고, 첫찌가 장염이 한창일 때 둘찌는 다시 새로운 바이러스로 열이 40도까지 오르고 있는 상황. 언제 갑자기 설사를 할지 모르고, 열이 나 처지는 아이 둘을 혼자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회식이라고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남편을 나는 이해해야 하는 걸까. 예외 상황마저 남편의 회식이 즐겁도록 역지사지의 마음을 품는 아내가 되어야 한다면 우리의 결혼은 누굴 위한 것인가.
역지사지.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 결혼은 쌍방의 합의로 이루어진 것이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결혼을 잘했네 못했네를 얘기하려면 두 사람의 입장을 다 들어봐야 한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상대도 당신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린아이들도 노력하는 역지사지를 어른도 배워야 할 것 같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배려할 때 오는 기쁨이 내 마음에도 얼마나 충만히 채워지는지를 말이다. 이런 예쁜 마음을 어른이 되면서 잃지 않기를, 역지사지가 당연하고 쉬운 사회가 되는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