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구, 개구쟁이 똥강아지들:D
친정엄마도 코로나에서 풀려나셨고, 남편도 사무실 큰 행사가 끝났다. 그렇다고 이분들이 내 곁에 계속 붙어 아이들 육아를 함께해주어야 한다는 전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어제도 엄마와 남편은 일 때문에 바빠 혼자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다. 그래도 지난주 두 분의 공백으로 해결해야 했던 빡센 육아 덕분에 이젠 그렇게 독박이 두렵지는 않다.
그러나 부엌일을 하며 뒤를 돌아볼 때마다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아이들. 결국 식탁 주변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 두둥!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두툼한 잠바들을 꺼내고 빨아 건조대에 널었었다. 집에 오자마자 걸려있는 겉옷들을 보며 "우와! 세탁소다!!" 하며 신나게 옷가지를 옮겨오는 첫째.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마치 Ctrl C&Ctrl V를 누른 듯 똑-같이 행동하는 둘째였다. 의자만으로는 걸어둘 공간이 충분치 않아 아예 작은 건조대를 꺼내 주니 신명 나게 세탁소에서 옷장사를 시작했다.
조금 있다 뒤를 돌아보니 열심히 병풍차트로 칸막이를 만들고 의자들을 가져와 병원을 완성시킨 첫째. 늘 환자는 동생이다. 둘째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환자분~ 들어오세요!!"를 외쳤다. 그걸 또 순순히 따라주는 동생이 있기에 그래도 시간은 평화롭게 흘러갔다. 비록 '주사 맞기'에서 서로 언쟁과 몸싸움이 생기긴 했지만. ㅎㅎ
여기에 모자라 방에 있던 인형들을 다 가져오며 낮잠시간이라고 인형들을 챙기고, 자기들이 덮는 이불을 또 다 가져와 식탁아래에 깔았다. 하. 재료 하나를 손질할 때마다 벌어지는 아이들의 이벤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젠 둘이 같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둘을 낳길 잘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도마질을 이어갔다.
이렇게 생각하는 찰나 "에에에엥~~ 엄마! OO가 때렸어요!!!" 도대체 누가 형이고 동생인지. 언제는 그렇게 동생을 때리더니 이제는 늘 동생한테 맞았다고 우는 첫째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즘 때리는 문제로 둘째가 혼이 많이 났었다.
"그래도 때리는 건 아니야.",
"누가 형아를 때려!! 형아의 쓴맛 좀 볼래?!!",
"한 번만 더 때리면 너의 이 못된 손바닥을 엄마도 때릴 거야!"
이런 말들만 수없이 했던 나였다. 그런데 사실 내가 그 상황을 제대로 목격한 적이 별로 없다. 늘 사이렌처럼 울리던 첫째의 울음소리를 듣고 가 벌어진 결과만 보고 판단했을 뿐, 이게 둘째 입장에선 공평했을까.
이제야 겨우 28개월인 아이. 아직 형만큼 말로 제대로 표현이 안 되는 나이이다. 분명 본인이 먼저 가지고 놀던 것을 형이 빼앗아놓고 엄마한테 거짓말하고 있을 수도 있다. 자기도 형처럼 멋지게 블록도 쌓고, 역할놀이 공간도 만들고 싶은데 내가 하는 건 다 잘 안되고 무너지고. 짜증이 나고 있었을지 모른다. 아무리 말로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지만,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자신의 분함과 억울함을 때리는 걸로 밖에 표현을 못했을 수 있다. 둘째의 서러운 마음들이 어제따라 마구 읽혀졌다.
그래서 아이들의 논쟁과 울음소리로 뒤범벅이 된 순간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려 엄청 애썼다. 첫째의 마음, 둘째의 마음을 우선적으로 공감해 주었다. 한 번은 장난감을 상대에게 나눠주라 하기도 했고, 한 번은 한 아이에게 몰아주고 갖지 못한 아이를 데려와 나와 시간을 보내게 하기도 했다. 비록 이런 일들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지만 욱하는 순간들을 꾸욱 눌러 담으며 아이들에게 소리치지 않았다. 그 시점을 잘 넘긴 것에 나를 매우 칭찬했다. 이러다 화병이 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나도 이런 성공이 한번으로 끝나는 건 아니니까.
일을 다 마쳤다고 울리는 세탁기 소리에 빨래를 가지러 베란다로 갔다. 아- 하늘이 참 예뻤다. 노을과 섞인 하늘색은 붉은빛이 옅어진 핑크빛이었다. 이 황홀한 순간을 혼자 느끼기 아까워 아이들을 불렀다. "첫째야, 둘째야 이리 와봐! 하늘이 너무 예뻐!" 베란다 협탁 위로 아이들을 안아 세우고 창문을 열었다. 쌀쌀해진 바깥공기가 살갗에 와닿는다. 여름에서 가을로 지나가는, 반팔이 춥게 느껴지는 그 시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 왔다. 몽글몽글한 기분을 느끼며 하늘을 바라본다. 이거면 됐다. 순간을 잘 살아내고 있으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