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찌와 사촌언니와 함께 :)
오전간식: 잣죽
점심: 소고기야채볶음밥, 유부된장국, 미트볼케찹조림, 요구르트, 깍두기
오후간식: 바나나 우유
평소 같았으면 맛있기만 했을 식단이 자꾸 눈에 밟히는 이유는 아직 완전히 건강하게 돌아오지 못한 첫찌의 장 때문이었다. 그제부터 작정하고 오늘은 가정보육을 해야지 마음먹고 있었다. 다행히 어제 한의원을 다녀오고 나서부터 조금씩 회복하는 우리 첫찌. 곧 독일로 돌아갈 사촌언니와 함께 즐거운 나들이를 떠났다.
뭉게뭉게 떠있는 구름과 그 사이를 지나가는 파아란 비행기. 그림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첫 번째 목적지를 향해 갔다. 원래는 도립미술관의 작품들을 감상할 예정이었는데 등원 시간이 늦어져 일정이 틀어졌다.
이시돌 주변이라도 구경하자는 생각으로 가는데 첫찌가 계속 짜증을 낸다. 출발 한지 10분도 되나마나 한 상황에서 "언제 다와~~~ 언제다와?!!!"를 외치는 아이.
"네가 지금 이렇게 징징대는 이유가 뭔지 엄마한테 말해봐. 배가 아픈 거야? 쉬가 마려운 거야? 응가가 마려운 거야? 배가 고픈 거야? 졸린 거야? 뭐야???"
"배가 고파서!"
장염이 막바지에 이르니 끝나가는 첫찌도, 끝이난 둘찌도 먹성이 엄청나게 커지는 중이다. 돌아서면 배고파, 돌아서면 먹을 것을 내놓으라는 아이들. 이럴 줄 알고 집에서 챙겨 온 구운 계란을 두 개나 먹였는데도 배가 고프다는 아이였다.
이 분의 장은 위태로우시기 때문에 성당 근처 우리밀 빵을 찾아보았고(한의원에서 밀이 맞는 체질이라 조금의 우리밀은 먹어도 된다 하셨음) 한림에 있는 빵집을 찾아갔다.
우리 상전님, 만족하시옵니까!
천연발효빵이어서 그런가 시큼했지만 건강한 맛이었다. 아이에게도 기본 빵을 조금 떼어주고 금악성당으로 향했다.
나에게는 은총의 성당이다. 우리 첫찌가 내 배 속에 있는 줄 모르고 이곳에서 친한 동생 부부의 혼배미사를 드렸었다. 여전히 클라라수도원 수녀님들의 찬양은 나를 평온하게 했다. 가끔씩 생각이 나면 12시에 맞춰 오는 곳인데 오늘은 혼자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여서 더 마음이 좋다.
첫찌가 말을 크게 하고 싶다 하여 결국 중간에 나와 아이와 함께 유아실을 이용했다. 성체를 모시고 오는데 눈물을 닦는 언니를 보니 절로 언니를 위한 기도를 하게 된다. 언니가 부디 힘을 낼 수 있기를. 하느님께서 우리 언니를 꼭 지켜주시기를.
미사가 끝나 나오는데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임 신부님을 바라보았다. 아일랜드 분이셔서 생김새가 우리와 달랐다. 헬로 신부님이라 얘기하며 나는 아이에게 "가서 '신부님,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해 봐"하고 제안을 했다. 그런데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아이가 덜컥 신부님을 향해 달려가며 "신부님! 고맙습니다!!" 하고 안기는 것이다. 첫찌의 용기와 당찬 행동에 주변 분들도 깜짝 놀랐다.
귀여움을 듬뿍 받아 행복한 아이. 밖으로 나오니 민들레 동산이 있었다. 홀씨를 후후 불며 날리는 재미에 폭 빠져 백개는 더 불고 갈 거라는 사랑둥이다.
오는 길에는 수목원 근처 담아래에 들려 버섯돌솥밥을 먹었다. 1시 30분이 넘는 시간이었는데도 웨이팅이라니.
방문할 때마다 버섯은 먹어본 적이 없어 그다지 매력을 못 느끼고 있었는데 아이 덕분에 먹게 된 버섯 돌솥밥은 재료 고유의 맛이 느껴지며 고소하고 담백했다. 어머, 맛있잖아!
돌솥 안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 순간적으로 그릇을 만진 아이는 울음보가 터졌지만, 사장님의 친절한 배려로 약도 바르고 고기반찬까지 얻어먹을 수 있었다. 아이를 보면 그저 사랑으로 변하는 어른들의 순수한 마음에 감사한 오늘이다.
한라도서관에 들려 책을 반납하고 다시 빌리고 어린이 도서관에 들어갔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곤 일어서지 못하는 아이와 나. (ㅎㅎ) 운전하는 내내 하품이 쏟아져 언니가 입 찢어지겠다고 했었는데, 역시나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일찍 나왔다.
행복하고 즐거운 반나절 데이트를 보냈다. 이젠 어디를 데리고 다니든 첫찌와 함께면 다닐 맛이 난다. 둘찌가 얼른 이만큼만 컸으면 하고 바라다가도 그러면 정말 아이들이 다 큰 어른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 했던 말을 취소하고 지금을 즐긴다. 귀한 아이들이 있어 나는 더 귀한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