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짝이는 루작가 Oct 04. 2024

내 이름은 김궁상이 아닙니다

엄마의 마음가계부

남편과 나의 데이트는 큰 게 아니었다. 주말 점심을 먹고 아이들을 차에서 재우며 커피를 테익아웃하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 음악이 자장가인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제주의 서쪽, 동쪽 아름다운 풍경들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걸 좋아했다. 그때 서로에게서 응원과 위로를 많이 받기도 했고.


그러나 두어 달은 된 듯하다. 점점 첫째 아이의 낮잠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과 묵주기도도 해보고, 우리끼리 빨리 무슨 말이든 해보자 하며 방식을 바꿔보아도 첫째의 눈은 말똥말똥이었다. (어린이집에서는 잔다는데 주말은 왜.. ㅠㅠ) 결국 우리는 포기하고 둘째가 자는 동안 첫째를 데리고 영화를 보든 도서관을 가든 다른 놀거리를 주어야겠다 생각했다. 우리도 쉬어보겠다고 패드를 보여준 시간이 더 많은 게 흠이지만 말이다.


어제는 날도 춥고 어둑하고, 따뜻한 라떼 생각이 났다. 약속이 있어 나왔다 점심을 먹고 첫째의 낮잠을 기대했다. 그날 아침 6시부터 일어나 활발히 움직였던 터라 졸릴 거라 예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저 찰옥수수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간절함을 호소할 뿐이었다. 결국 어제도 재우려는 욕심은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며 남편에게 말했다. 


"아- 커피 한 잔 하며 드라이브 다니던 때가 그립다!" 

"커피 테익아웃 하고 갈까요?"

(잠시 생각하고선) "아니요, 집에 있는 믹스 커피 마시면 돼요~"

"아이고~ 왜 이렇게 김궁상씨가 됐을까?!

"나?! 그냥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건데?!! 한 푼 두 푼 아껴야 하는 거라구~~~!" 


남편에게 일침을 가했더니 내가 안 마시면 본인도 집에 있는 드립백으로 내려먹겠다 했다. 결국 따라올 거면서 왜 나한테 김궁상이라는 거야.


집에 와 지난달부터 적기 시작한 소비노트를 펼쳤다. 아꼈다 생각했는데도 보름동안 지출한 금액이 80만 원이면 분명 문제가 있다. 전보다 외식비는 훨씬 줄였는데, 마트에서 장 본 비용이 늘어난 게 문제였다. 아이들 소풍 핑계를 대볼까 했으나 그 덕에 남은 재료들로 주말에 김밥, 주먹밥을 싸며 끼니를 해결했으니 과소비는 아니었다. 



남편의 회사와 관련된 마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출산할 때부터 자연드림 조합원이 되어버렸다. 한살림과 초록마을에 비해 자연드림은 비싸지 않은 편이고, 일반 마트와 비교했을 때 좋은 먹거리가 더 저렴하게 나오는 상품들도 있다. 케익 값도 3일 전에 예약을 하면 다른 베이커리에 비해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으니 종종 이곳을 찾는다. 


내가 정말 고민하며 신중한 구매를 했던 영수증은 버리고, 아쉬웠던 소비는 영수증을 붙이며 성찰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쓸데없는 소비를 하게 된다는 것, 내 예상과 달리 맛이 없거나 가족들의 반응이 별로였던 것은 체크해 다음 소비에 참고한다.


그런데 이런 내가, 궁상맞다고?! 흥칫뿡이다.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며 사는 사람은 누구였나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벌어오는 돈으로 이렇게 지낼 수 있으니 지금은 입을 싹 닦을 수밖에. 올바른 소비 습관이 번에 잡히진 않겠지만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진정한 소비의 맛을 느끼며 살아갈 있을 거라 믿는다. 그때 다시 말할 거다. 이름은 김궁상이 아니고 김소박절제안정만족풍요로움이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떡볶이는 사랑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