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농담
그는 가족이라는 게 이렇게 엉성한 허구 덩어리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만약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가족이라고 대답하는 게 가장 정답인 걸로 돼 있는 모범적 시민에 지나지 않았다.
가끔은
내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타인이었으며 여전히 타인인, 사랑 그 이상과 그 이하의 미묘한 감정을 교류하고 있는 남편은 나의 치부를 보여도 안전할 것 같은 사람이나 떨어져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행복했던 나의 유년 시절과 조금은 힘들었던 결혼 생활의 정신적 지주인 부모님에게서 달아나고 싶을 때가 있다.
항상
사랑스럽고 나의 목숨과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내 아이들의 행복한 유년시절의 기억을 위해 나는 돈이 필요하다.
타인이었으며 여전히 타인인, 사랑 그 이상과 그 이하의 미묘한 감정을 교류하고 있는 남편의 비타민C를 위해 나는 돈이 필요하다.
나의 행복과 안녕을 바라는 부모님의 건강한 웃음을 위해 나는 돈이 필요하다.
돈이 필요해서 몸도 마음도 무겁다.
책임감!
그 굴레로부터 나는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 때로는 무게를 벗어던지고 회피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다 보면 예쁜 문장들 속에서 가족의 굴레, 돈의 힘, 현실회피를 위한 외도, 죽음 속에서 드러난 속마음, 책임의 민낯이 투명하게 비쳐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