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셰익스피어의 고향과 생가

by 권혜경

셰익스피어의 시작이자 끝이었던 곳!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

16-7세기 잉글랜드에서 활동하였던 그의 작품 세계는 21세기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비극과 희극, 역사극, 또한 14행 시 소네트 등 많은 작품을 통해 셰익스피어는 일관되게 인간의 본성을 소재로 한 다양한 문학세계를 만들었다. 그의 작품들은 그가 태어난 영국뿐만 아니라 서양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교양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나아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데도 꼭 필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그의 인생 말기에 나온 4대 비극 『햄릿』(Hamlet), 『맥베스』(Macbeth), 『오셀로』(Othello), 『리어왕』(King Lear) 등은 인간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깊은 관심과 심오한 주제 의식이 뛰어난 연극 기법과 훌륭하게 어우러진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맥베스: 내일, 내일, 그리고 내일은

매일매일 조금씩 기어가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음절에 다다른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과거는 바보들에게

보잘것없는 죽음으로 가는 길을 밝혀준다.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이여!

인생은 한낱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떠들다

사라져 버리는 보잘것없는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소리는 마치 아무 의미 없는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찬

백치의 말일뿐이다. (『맥베스』 5막 5장, 권혜경 번역)


Macbeth: Tomorrow, tomorrow, and tomorrow,

Creeps in this petty pace from day to day,

To the last syllable of recorded time;

And all our yesterdays have lighted fools

The way to dusty death. Out, out, brief candle!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5.5, Macbeth, London: Methuen, pp. 153-54)


『맥베스』5막 5장에 나오는 주인공 맥베스의 유명한 대사이다. 셰익스피어의 대사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녀들의 예언과 자신의 정치적 욕망 때문에 섬기던 군주를 살해한 맥베스가 작품의 후반부 반군과 대치하는 동안 아내 레이디 맥베스의 죽음을 전해 들은 후 내뱉는 독백이다. 권력을 잡기 위해 왕을 죽이기까지 했던 맥베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깨닫는 삶과 시간의 무상함이 잘 드러나 있다.


KakaoTalk_20251217_171526717.jpg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은 런던에서 기차로 2시간, 자동차로는 3시간 정도 달리면 닿을 수 있다.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에이번 강변에 자리 잡은 도시이다. 강가에 위치한 도시이기 때문에 스트랫퍼드는 오래전부터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image06.png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본 지도 (출처: www.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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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생가는 1964년부터 ‘셰익스피어 센터’(The Shakespeare Centre)에서 운영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센터에서 입장권을 사서 생가로 들어가는 구조인데, 셰익스피어와 관련되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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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0ilSwo2H3oyW0VlzZEQknqZ7CjKZbCn3ePRy-WsnR3BVKJY33np_fRM_dAY0DF-ZD3xsVfXUTVU769RqzBxKWh9iYtN3pW3o_2v6zTdi-0ikrxFUYQk9R64TncF3mY0myCN1DXBnpP=s680-w680-h510-rw . 거리에서 바라본 셰익스피어 생가 모습 (출처: The Shakespeare Centre, Nina Càccamo)


<셰익스피어의 출생>

스트랫퍼드에서 셰익스피어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그가 1564년 4월 26일 홀리 트리니티 교회(Holy Trinity Church)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당대에 보통 아기들이 출생 후 사흘 만에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사흘 전인 4월 23일을 셰익스피어의 출생일로 정하고 있다.


84347353_m.jpg Holy Trinity Church (출처: www.tombtravel.com)


그의 아버지 존(John Shakespeare)은 장갑 제조업자로서 인근 마을 출신인 메리 아든(Mary Arden)과 결혼하였다. 존과 메리는 오늘날 셰익스피어의 생가로 일컬어지는 스트랫퍼드 헨리 가(Henley Street)의 집에서 생활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수년간 마을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568년에는 시장(Bayliff)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장갑 제조업자일 뿐만 아니라 양모를 취급하기도 하였으며 돈을 빌려주는 대부업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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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0ilSymhvBY304eWtUuIkXOBBg48ddVgCfafw5-LVhGfdZz-WFpLhi5Qs9TkK5AaB-wIkQ-dAB_s7s85xIGAbR9HgIKZnVMeJTMqRbxxDuxVDwfmcubp9rmR_MAfjOrP6irTRgv7F4=s680-w680-h510-rw 셰익스피어 생가 내부 침실 모습 (출처: The Shakespeare Centre, Bogdana Banu)


어린 시절 셰익스피어는 오늘날의 유치원 격인 소학교(‘petty’ or junior school)를 거쳐 ‘문법학교’(the Grammar School)에 다녔다. 셰익스피어가 다니던 ‘에드워드 6세 문법학교’(King Edward VI School)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스트랫퍼드에 남아있다.


<셰익스피어의 결혼>

스트랫퍼드에서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기록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1582년 그가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라는 여성과 결혼식을 올리는 시점이다. 그녀는 스트랫퍼드 인근에 있는 쇼트리 마을 부유한 농부인 ‘리처드 해서웨이’(Richard Hathaway)의 딸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결혼 당시 셰익스피어가 18세, 앤이 26세로 무려 앤이 8살이나 연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에 대한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다. 결혼 후에는 1583년 5월 26일 셰익스피어의 첫 아이인 ‘수산나’(Susanna)에 대한 세례 기록이 나타났으며, 2년 후인 1585년 쌍둥이 햄넷(Hamnet)과 주디스(Judith)에 대한 세례 기록이 뒤를 이어 나타났다.


Anne_Hathaway.367bfdd6.fill-1200x600-c75.jpg 셰익스피어의 부인 앤 해서웨이 (출처: Shakespeare Birthplace Trust)


<사라진 7년>

자녀들의 세례 기록 이후 스트랫퍼드에서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기록은 사라진다. 1585년부터 사라진 셰익스피어 관련 기록은 흥미롭게도 1592년 고향 스트랫퍼드가 아닌 런던의 극장가에서 발견된다. 기록이 나타나지 않은 이 7년을 흔히 셰익스피어의 ‘사라진 7년’으로 부른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기록이 다시 발견되는 곳은 1592년 동료 극작가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의 글이다. 그린은 이 글에서 셰익스피어의 성공을 질투하여 그를 ‘연극계를 뒤흔드는’(Shake-scene) ‘우쭐대는 까마귀’(an upstart crow) 같은 놈이라고 비아냥대고 있다. 당시 옥스퍼드/케임브리지 출신 극작가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린은 대학도 나오지 않은 셰익스피어라는 한 신인 극작가가 런던 극장가에 몰고 온 성공을 질투하며 그를 비판한 것이다. 추정하건대 이 시점에 셰익스피어는 이미 런던 극장가의 전도유망한 극작가로 자리 잡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종장 극단 (the Lord Chamberlain’s Men)>

1594년 셰익스피어는 국왕의 의전을 담당하는 시종장이 후원하는 극단에 들어간다. 이후 거의 20년간 셰익스피어는 시종장 극단의 정규 극작가로서 매년 두 편 정도의 극작품을 썼다. 처녀 여왕(Virgin Queen) 엘리자베스 1세가 죽은 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영국의 통합 왕인 제임스 1세가 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 만큼이나 열렬한 연극 애호가였던 제임스 1세는 시종장 휘하에 있던 ‘시종장 극단’을 직접 ‘왕립극단’(the King’s Men)으로 이름을 바꾸어 자신이 직접 관할하였다.


William-Shakespeare-Lord-Chamberlains-Men-performing-Loves-Labours-Lost-for-Queen-Elizabeth-circa-mid-19th-century.jpg Lord Chamberlain's Men 극단 공연 장면 삽화 (출처: Britannia.com)


1596년 셰익스피어의 아버지는 문장을 하사 받았는데, 1601년 아버지가 죽은 후 셰익스피어가 그 문장을 물려받아 ‘젠틀맨’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하였다. 이 당시 배우가 젠틀맨이라는 지위를 가지는 경우는 드물었으며, 문장을 보유하는 일도 드물었다. 이는 극작가로서 셰익스피어가 이루었던 성공에 기인하는 사례라고 하겠다. 물질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던 셰익스피어는 1597년 고향인 스트랫퍼드에 ‘뉴 플레이스’(New Place)라는 저택을 구매하여 고향에 들를 때마다 머무르곤 하였다.


SBT__Shakespeares_Coat_of_Arm.c05b18d7.fill-1200x600-c75.jpg 셰익스피어 집안의 문장 (출처: Shakespeare Birthplace Trust)


1611년경부터 셰익스피어는 런던 극장가에서 물러나 고향집 뉴 플레이스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1616년 4월 23일 고향 스트렛퍼드에서 숨을 거두었고 이틀 뒤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 묻혔다. 그의 아내인 앤도 1623년 사망한 후 남편 옆에 묻혔다. 셰익스피어의 가계는 1670년에 손녀 엘리자베스가 사망함으로써 끊어졌다.


claudiodivizia-Depositphotos_120596890_L.jpg Holy Trinity Church 내 셰익스피어의 무덤 (출처: www.tombtravel.com)


셰익스피어가 죽은 지 7년 뒤인 1623년 그의 작품을 묶은 최초의 선집, ‘퍼스트 폴리오’(First Folio)가 그의 아내와 동료들에 의해 출판되었다. 이 작품집에는 그가 생전에 발표하였던 작품의 절반인 36편의 극 작품이 실려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생가는 직계 후손이 끊어진 후 여러 사람의 소유를 거쳤는데, 18-19세기에도 유수한 문학가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끼고 있던 다이아몬드 반지로 유리창에 자신들의 이름 이니셜을 새기기도 했는데 그 자체가 오늘날 명물로 남아 있다.


1846년 이 생가가 한 미국인 행사 기획자에게 팔릴 위기에 처하자 찰스 디킨즈(Charles Dickens) 등을 중심으로 'Shakespeare Birthplace Trust'가 구성되어 많은 기금을 조성해 이곳을 보존하게 되었다. 자칫 사라질 뻔한 셰익스피어의 생가가 19세기 영국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오늘날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고 또 죽어서 묻힌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본!

그의 작품을 사랑해 그의 흔적을 찾아온 수많은 '순례자'들이 1년 내내 넘쳐나는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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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방문했던 곳이라 당시 사진이 제대로 없습니다. 다행히 몇 군데에서 필요한 사진들을 찾을 수 있어서 출처를 밝히고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