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주의 맨 끝자락 키 웨스트!
플로리다주 최남단 키 웨스트(Key West)에 있는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의 집을 찾아가는 건 내 오랜 꿈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미국 본토도 아니고 플로리다 남쪽 열쇠 꾸러미처럼 점점이 이어진 키 제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키 웨스트를 찾는 일은 쉬울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하던 미국 연구년의 기회가 찾아왔다. 중서부에 위치한 한 대학에 체류하던 우리 가족은 아이들 봄 방학이 시작되던 3월 무렵 남쪽으로 남쪽으로 차를 몰고 내려왔다.
드디어 플로리다주에 접어들어서는 케네디 우주 센터(Kennedy Space Center)를 방문해서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버스 투어를 신청해 넓디넓은 우주 센터를 돌아보았다. 미국의 위상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규모였다.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Everglades National Park)에도 들러 끝없이 펼쳐진 아열대 습지와 그곳에 자생하는 동식물 군을 볼 수 있었다. 단연 압권은 자연 상태의 악어를 보는 것이었다.
플로리다 키(Florida Keys)는 플로리다 남부에 위치한 산호섬들로 이루어진 열도들을 지칭한다. 마이애미에서 키 제도로 들어서면 키 라르고(Key Largo), 이슬라모라다(Islamorada), 마라톤(Marathon) 등이 이어지고 가장 최남단에 키 웨스트가 자리 잡고 있다. 카리브해에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을 연결하는 도로와 다리를 건너는 일은 초록을 품은 푸른 바닷물빛과 하늘빛에 연신 감탄하는 과정이었다. 키 웨스트는 US 1번 국도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드디어 헤밍웨이가 10여 년간 살았던 ‘헤밍웨이 저택/박물관’(Hemingway Home & Museum)에 도착했다. 헤밍웨이는 스코트 피처제랄드(Scott Fitzerald),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등과 함께 소위 '잃어버린 세대'(The Lost Generation)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이다.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한 이들은 향후 미국 현대 문학의 새로운 판도를 제시하였으며, 나아가 세계문학사상 처음으로 주류로서의 미국 문학을 만들어나간 예술가들이다.
파리 생활을 청산한 후 키 웨스트로 오기 전 헤밍웨이는 잘 알려진 대로 쿠바 아바나에서 몇 년을 지낸 바 있다. 1928년 4월 키 웨스트에 두 번째 부인인 폴린(Pauline)과 함께 도착한 헤밍웨이는 집필하던 반 자전적 소설인 <무기여 잘 있거라>(Farewell to Arms)를 탈고하였다. 그리고 대형 어종을 낚는 스포츠 낚시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키 웨스트에서의 삶에 만족한 헤밍웨이 부부는 드디어 1931년 1850년대 스페인 식민지 양식으로 지어진 이 집을 구입하고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집이 완성된 후 헤밍웨이는 키 웨스트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헤밍웨이 부부는 1940년 서로 이혼할 때까지 키 웨스트 저택에서 지냈다.
집안 곳곳에는 헤밍웨이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의 아내와 유럽에서 구입한 엔틱 가구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그가 아프리카 사파리와 미국 서부에서 사냥을 해 포획한 각종 동물 박제들과 기념 트로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2층 그의 집필실에는 그가 사용하던 타자기와 휴식을 취하던 긴 의자가 놓여 있었고, 벽면에는 그가 사냥한 사슴과 큰 물고기의 박제를 볼 수 있었다. 헤밍웨이가 사냥과 낚시광이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헤밍웨이 하우스에서 흥미로운 한 가지 사실은 저택 곳곳에 발가락이 여섯 개인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는 점이다. 원래 헤밍웨이가 키 웨스트에서 알고 지내던 한 선장에게서 발가락이 여섯 개인 고양이를 선물 받았다고 한다. 집안 곳곳 돌아다니는 고양이들 가운데 발가락이 여섯 개인 고양이가 많아 그 후손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혼 후 헤밍웨이는 세 번째 부인 마사 겔혼(Martha Gellhorn)과 다시 쿠바 아바나로 가서 살았다. 하지만 그는 1940년대와 50년대에 걸쳐 자주 키 웨스트를 찾아 친구들과 어울려 낚시를 했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문체는 소위 '하드 보일드 스타일'(hard-boiled style)이라고 불리는 매우 간결한 문체이다. 젊은 시절부터 기자 생활을 하면서 몸에 익힌 팩트 중심의 간결하면서도 짧은 글 형식이다. 그의 스타일은 복잡하고 난해한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의 문체와 자주 대비되기도 한다.
쿠바와 키 웨스트에서의 경험은 1952년 중편인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를 탄생시켰다. 팔십사일 동안 바다에 나가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노인 산티아고(Santiago)가 팔십오일째 바다에 나가 큰 물고기를 잡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나 뼈만 남은 물고기를 달고 다시 항구로 돌아오는 내용이다.
<노인과 바다>를 구성하는 헤밍웨이의 문장들은 군더더기가 없을 정도로 간결하며, 망망대해와 거대한 물고기, 그리고 인간이 서로 교감하는 모습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1952년 이 작품이 발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고, 마침내 헤밍웨이는 이 작품으로 1953년 퓰리처상을, 이어 1954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노인의 모든 것이 늙거나 낡아 있었다. 하지만 두 눈만은 그렇지 않았다. 바다와 똑같은 빛깔의 파란 두 눈은 여전히 생기와 불굴의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노인과 바다>, 문학동네, p. 11)
"Everything about him was old except his eyes and they were the same color as the sea and were cheerful and undefeated." (<노인과 바다>, 문학동네, p. 10)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노인은 말했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 (p. 199)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he said.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p. 198)
"저 길 위쪽 오두막에서 노인은 다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엎드려서 자고 있었고 소년이 옆에 앉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p. 247)
"Up the road, in his shack, the old man was sleeping again. He was still on his face and the boy was sitting by him watching him. The old man was dreaming about the lions." (p. 246)
헤밍웨이가 1950년대 초 <노인과 바다>를 집필했던 곳은 쿠바 아바나 인근이었다. 당시 그가 머물며 작품을 집필했던 장소 역시 현재 헤밍웨이 박물관(Museo Memorial Ernest Hemingway)으로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언젠가 쿠바를 여행할 기회가 오면 아바나 인근에 있는 헤밍웨이 박물관을 꼭 방문하고 싶다.
헤밍웨이 저택 기념품샵에서 그의 글이 담겨있는 조그만 문진을 하나 샀다. 그의 모습이 담긴 25센트짜리 우표와 물고기, 그리고 'Good writing is true writing."이라는 그의 글이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이 문진은 내가 교수로 재직하던 내내 내 연구실 책상 위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