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자(Giza)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나다!
단체여행보다는 주로 개별 여행을 선호하는 나에게 아직 가보지 못한 '이집트'는 난공불락의 산처럼 보였다. 일단 영어가 잘 통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카이로뿐만 아니라 아스완, 룩소르, 아비도스 등 여러 지역에 걸쳐 유적이 산재된 곳이라 이동 방법 역시 녹녹지 않아 보였다. 그러다 2025년 9월 한 조간신문 하단에 실린 '한국이집트학연구소 곽민수 소장과 함께 하는 2026 이집트 문명 탐사'(9박 12일) 프로그램을 발견하고서 쾌재를 불렀다. 바로 신청을 하였고 우리 부부는 1월 2일부터 13일까지의 여정을 30여 명의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하였다.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지구상 그 어느 지역의 역사보다도 길고 또 매우 복잡하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짧게 잡아도 3천여 년, 길게 잡으면 약 7-8천 년에 이르는 매우 오래된 문명이다.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시대는 '선왕조 시대'(Predynastic Period)로서 기원전 5,300-3,100년 경을 일컫는다. 그다음에 나타나는 시대는 '초기왕조 시대'(Early Dynastic Period: 0, 1, 2 왕조)로서 기원전 3,100-2,686년 경을 말한다.
'고왕국 시대'(Old Kingdom: 3, 4, 5, 6 왕조)'는 기원전 2,686-2,160년 경을 일컫는데 '피라미드 시대'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가 피라미드 하면 딱 떠올리는 거대한 기자의 피라미드들을 비롯한 많은 피라미드들이 대부분 이 시기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피라미드의 변천사>
카이로에 도착하자마자 카이로 인근 사카라(Saqqara)로 이동해 최초의 피라미드인 '계단식 피라미드'를 살펴보았다. 이 피라미드는 기원전 2650년 경에 만들어진 고왕국 제3왕조 시대의 파라오 조세르(Djoser)의 피라미드이다. 이 피라미드의 설계와 건축을 담당했던 이는 임호텝(Imhotep)이라는 인물이라고 했다.
다음날 아스완으로 항공 이동하기 전 오전에 다슈르(Dashur)로 이동하여 굴절 피라미드와 붉은 피라미드를 답사하였다. 이 피라미드들은 제4왕조 시대를 연 스네페루(Sneferu, 기원전 2,600년 경 재위) 파라오 때 건설된 것들이다. 스네페루는 여러 개의 피라미드를 건설하였는데, 다슈르 남쪽에 위치한 메이둠(Meidum)에 피라미드를 짓다가 외벽이 무너져내리기도 하였다. 이는 오늘날 '붕괴 피라미드'라고 불린다.
메이둠 피라미드의 붕괴를 교훈 삼아 다슈르에서 피라미드를 지을 때 처음엔 54도의 경사각으로 외벽을 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절반쯤 짓다가 다시 상단부 경사각을 43도로 낮추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소위 굴절 피라미드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이 피라미드는 밑변의 길이가 184m, 높이는 105m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
이 굴절 피라미드는 내부의 구조도 2중 구조로 되어 있었다. 피라미드 내부의 방이 2개씩 2중 구조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입구 역시 2개로 되어 있었다. 한 입구는 피라미드의 북쪽 면에 위치하고 있고 지하의 방으로 이어지며, 또 다른 입구는 서쪽에서 기단부의 방으로 향하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피라미드의 입구가 북쪽과 서쪽 양쪽에 있는 것은 원래 북극성의 방향을 가리키는 별 신앙과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새롭게 부상하던 태양신앙과의 관계를 추측할 수 있다고 한다.
굴절 피라미드 근처에 스네페루 왕 때 건설한 '붉은 피라미드'도 있었다. 이 피라미드는 건설 초기부터 43도의 경사각으로 지어졌으며, 밑면의 길이가 220미터, 높이는 102미터로 비교적 낮고 완만한 경사도를 보였다. 원래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외장석이 벗겨져 내리면서 안쪽 석재가 외부로 노출되어 붉은색을 띠게 되었다.
굴절 피라미드와 붉은 피라미드는 내부 중심부까지 내려갔다 올라왔다. 특히 붉은 피라미드의 경우 규모가 커서 힘이 많이 들었다. 겨우 한 사람이 등을 바짝 굽혀야만 통과할 수 있는 어둡고 좁은 통로를 통해 10여 분을 내려갔다 올라가기를 반복하는 고난도의 과정이었다. 처음부터 '폐소공포증' 있는 사람은 참가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기도 하였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함께 하니 견딜만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모두들 극심한 허벅지와 종아리 통증으로 움직일 때마다 저절로 비명을 지르기 일쑤였다.
스네페루 왕의 아들 쿠푸(Khufu)는 아버지가 지었던 피라미드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피라미드를 건축하였다. 오늘날 카이로 근교 기자 지역에 있는 대피라미드가 그것이다. 기자 방문은 이집트 여행 마지막날 여정이었다. 아스완으로부터 에드푸, 룩소르, 덴데라, 아비도스, 아마르나 등 여러 곳을 답사한 후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다시 카이로로 돌아와서 이루어졌다.
피라미드의 완성은 단연 기자의 대피라미드였다. 한 면의 길이가 230미터, 높이가 146미터이고 피라미드 건설에 사용된 돌의 숫자는 약 260만 개, 전체 무게는 약 700만 톤이나 된다고 한다. 쿠푸의 피라미드 역시 내부로 들어갔다. 여전히 몸을 수그리고 들어가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가는 '대회랑'을 거쳐 '왕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피라미드의 내부에서는 부장품이나 쿠푸 왕의 미라 같은 것은 전혀 뱔견되지 않았고 다만 왕의 방에는 화강암 석관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피라미드의 규모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건설 과정에 노예들이 동원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고대 이집트에는, 특히 피라미드가 지어졌던 고왕국 시대의 이집트에는 그런 노예가 없었다고 한다. 실제 이곳 기자에는 피라미드 건설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이 살았던 마을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그들의 삶의 질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쿠푸 왕의 피라미드 가까이 그의 아들인 카프레(Khafre) 왕의 피라미드가 있었고, 다시 그 옆으로는 그의 손자인 멘카우레(Menkaure)의 피라미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세 개의 피라미드를 한 곳에서 다 조망할 수 있는 파노라마 포인트로 가니 정말 멋진 광경이 펼쳐졌다. 넓은 사막 위로 세 개의 피라미드가 마치 그림처럼 공간을 장식하고 있었다.
세 개의 피라미드를 조망한 후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바로 스핑크스(Sphinx) 상이다. 흔히들 사진에서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스핑크스가 자리 잡고 있어서 서로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고 생각했는데 워낙 규모가 커서 다시 버스로 이동한 후 스핑크스를 볼 수 있었다. 스핑크스는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얼굴은 사람, 몸은 사자의 모습을 한 스핑크스 상은 고대 이집트 때부터 이집트 곳곳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기자에 있는 이 스핑크스 상의 규모는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석회암 돌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서 만든 기자의 스핑크스는 길이가 57미터, 높이는 20미터에 이른다.
이 스핑크스의 앞다리 사이에 투트모세(Thutmose) 4세가 세운 비석이 놓여있었다. 투트모세 4세가 왕자 시절 사냥을 하다 모래 언덕에서 잠들었는데, 꿈에 스핑크스가 나타나 '나를 이 모래 속에서 꺼내준다면 너에게 왕위를 주겠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가 사람들을 시켜 모래 언덕을 팠더니 실제 스핑크스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후 파라오가 된 투트모세 4세는 그 일화를 새긴 비석을 스핑크스의 앞발 사이에 세워놓았다.
스핑크스는 고대 이집트의 상상의 동물로, 이집트뿐만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동남아시아 등 여러 지역의 설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그리스 신화의 스핑크스와 비슷하지만 날개가 없다. 스핑크스라는 이름은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앞에 세워진 거석상을 그리스에서 스핑크스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한다. 보통 파라오의 권능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자 수호자로서 사원 입구에 세워졌다.
스핑크스 하면 고대 그리스의 비극 <오이디푸스>(Oedipus)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이 작품 속에서 스핑크스는 테베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아침에는 네 발로, 점심에는 두 발로, 그리고 저녁에는 세 발로 다니는 것이 무엇이나?'는 질문을 한 후, 답을 못하는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결국 오이디푸스가 그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하자 스핑크스는 절벽에 떨어져 죽었다. 사람의 얼굴과 사자의 몸을 가진 신화적 존재가 각 문화마다 발현되는 방식이 다르다.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이제까지 다녀보았던 그 어떠한 문화권의 유적보다도 그 규모에 있어서 비교할만한 대상이 없다. 더구나 그 거대한 유적을 만들었던 시점이 기원전 2,686-2,160년 경의 고왕국 시대라고 하니 경외감마저 들었다.
*위 내용 중 일부는 '2026 이집트 문명탐사' 때 받았던 안내 책자 내용을 참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