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헨 가도(Märchenstraße)의 종점 브레멘(Bremen)!
독일 북부에 위치한 소도시 브레멘은 18세기 초 독일 제국에 편입되기 전까지 상인 조합이 만든 무역 공동체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자유무역 도시였다. 당시 상인들은 예술과 문화에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 다양한 문화 예술이 꽃피던 도시이기도 했다.
브레멘 시내 중심에 위치한 시청 광장(Rathausplatz)은 15세기 초에 만들어진 고딕 양식의 시청사와 성 베드로 교회, 상공회의소 등이 자리 잡고 있는 전형적인 유럽의 광장이다. 광장에서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우뚝 솟은 거대한 ‘롤란트’(Roland) 석상이다. 롤란트는 신성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샤를르마뉴 대제의 호위 무사로서 이슬람 군대와의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인물이다.
1404년에 만들어진 5.5 미터 높이의 이 석상은 당대 막강했던 교회 권력에 맞서 베르겐 시의 독립과 자유, 상업적 번영을 수호하는 상징적 존재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칼을 빼들고 방패를 든 롤란트 석상의 시선이 광장 맞은편 교회를 향하고 있는 까닭이다. 2004년 고딕 양식의 시청사와 롤란트 상 모두 유네스코 월드 헤리티지로 지정되었다.
시청 광장 한쪽, 당나귀 등에 개, 고양이, 수탉이 차례로 올라서 있는 자그마한 동상이 여행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로 유명한 그림 형제(Grimm Brothers)의 동화 <브레멘의 음악대>(The Bremen Town Musicians)에 나오는 동물 캐릭터들이다. 이 동화는 알려진 대로 늙고 병들어 주인에게 버림받거나 또는 잡아먹힐 위험에 처한 네 마리 동물들이 주인공이다.
한 농장에 살던 당나귀는 나이가 들어 일을 못하게 되자 주인이 도살장이나 가죽 세공인에게 팔아야겠다는 말을 듣고 도망쳐 나온다. 브레멘에 가서 음악대에 들어가려고 결심한 것이다. 여행 중에 당나귀는 늙은 사냥개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사연인즉 사냥개가 늙어 사냥을 못하자 주인이 죽이려 해서 도망 나왔다고 했다. 함께 브레멘으로 가서 음악대에 들어가자는 당나귀의 말에 사냥개는 즉시 따라나섰다.
다시 길을 가던 중 그들은 울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고양이는 자기가 늙어 쥐도 잡지 못하고 난롯가에서 졸기만 한다고 주인마님이 자신을 자루에 넣어 물에 던질 거라고 해서 도망 나왔다고 했다. 당나귀는 고양이가 세레나데를 잘 부르니 함께 브레멘으로 가 음악대에 들어가자고 권했다. 고양이 역시 일행을 따라나섰다.
셋이 길을 가던 중 그들은 이번에 문 위에서 목청껏 울고 있는 수탉을 발견한다. 셋이 이유를 묻자, 수탉은 주인이 손님들을 위해 닭고기 수프를 만들 예정이라 마지막으로 울고 있다고 했다. 일행은 수탉의 목소리가 힘차니 함께 음악대에 들어가자고 해 수탉 역시 일행에 합류해 브레멘으로 향한다.
날이 저물어 동물들이 숲 속에서 쉬어 가려는데 불 켜진 집이 있어 살펴보니 도둑들이 저녁을 먹으며 훔쳐온 금화를 나누고 있었다. 동물들이 당나귀 위에 개, 고양이, 수탉이 차례로 올라타 동시에 소리를 지르자, 도둑들은 불에 비친 큰 그림자와 소리에 놀라 도망을 가버린다. 이후 네 마리의 동물들은 브레멘으로 가던 길을 중단하고 그 집에서 서로 행복하게 살았다.
왜 동물들은 하필 브레멘으로 가서 음악대에 들어가려고 했을까? 글머리에서 언급하였듯이, 한자동맹의 활발한 무역 도시였던 브레멘은 엄청난 부를 창출하였음은 물론 당시 예술과 문화에도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 동물들이 처음 목표로 삼았던 브레멘이라는 도시는 그들의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의 도시였던 것이다. 비록 중간에 그 꿈을 포기하고 숲 속 오두막에서의 소박하고 행복한 나날들을 선택하였지만!
<브레멘의 음악대>를 지은 그림 형제는 독일의 동화작가인 야코프 그림(Jacob Grimm, 1785-1863)과 빌헬름 그림(Wilhelm Grimm, 1876-1859)을 일컫는다. 두 형제는 모두 언어학을 전공하였으며, 문헌학자이기도 했다. 이들은 1806년도부터 독일 민요를 모았으며, 그 과정에 독일의 전래 민담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독일이 여러 공국으로 나뉘고 또 수차례 외세의 침입을 받는 상황에서 전래 민담 속에 담긴 독일의 정체성과 그 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들은 독일 지역에서 구전되어 오던 민담 86편을 모아 1812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Kinder- und Hausmärchen)를 출간하였다. 이후 1814년 70 편의 이야기를 추가하여 증보판으로 재출간하였다. 그림 형제의 동화집에는 <백설공주>를 비롯하여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라푼젤> <개구리 왕자> <헨젤과 그레텔>, <브레멘의 음악대> 등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독일에는 그림 형제가 태어난 '하나우'(Hanau)에서 시작해 북쪽에 위치한 브레멘까지 약 600 km에 이르는 환상적인 '메르헨 가도'가 있다. 메르헨은 독일어로 '동화'를 뜻하며, 그림 형제의 동화 속 배경과 독일의 전통 마을을 따라가는 아름다운 여행길이다. 1975년 4월 마인 강과 북해 사이에 위치한 약 40여 개 마을의 대표들이 힘을 합해 이 공동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림 형제의 고향 하나우를 출발해 메르헨 가도를 따라가면, 1829년부터 1837년까지 그림 형제가 대학교수로 지내면서 동화를 발표하였던 게오로크-아우구스트 대학교(Georg-August University)가 있는 괴팅겐(Göttingen)을 만날 수 있다. 또한 <피리 부는 사나이>(The Pied Piper)의 배경인 하멜른(Hameln)을 방문해 도시 전역을 장식하는 쥐 기념물과 피리 부는 사나이의 동상을 만날 수도 있다.
그림 형제는 덴마크의 동화작가 한스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과 더불어 19세기 유럽의 민담과 동화를 집대성한 인물들로 평가된다. 19세기 중반 이후 이들은 독일과 덴마크 두 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민담과 이야기를 채집하여 다양한 동화로 묶어내는 활동을 해 왔다. 주로 전래 민담을 채집하여 발간하였던 그림 형제와는 달리 안데르센의 경우 후기로 갈수록 자신의 창작 동화를 많이 썼다고 한다. <엄지공주> <인어공주> <벌거숭이 임금님> 등이 창작 작품의 사례이다.
그림 형제가 집대성한 수많은 민담들은 독일의 전통적인 소도시 곳곳마다 쌓여있던 소중한 경험과 기억들을 다채롭게 연결한 이야기의 고리들이다. 나아가 독일의 '메르헨 가도' 역시 그림 형제뿐만 아니라 독일인들의 마음속에 고이 전해져 온 소중한 이야기들을 구슬 엮듯이 하나하나 꿰어만든 '보배'같은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