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달루시아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

by 권혜경

스페인 최남단에 위치한 안달루시아(Andalusia)!


아프리카 북부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열풍 시로코(Sirroco)는 이 지역을 이글거리는 태양과 화려한 원색의 꽃들로 넘쳐나게 만들었다.


안달루시아는 스페인의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 세비야(Sevilla)와 코르도바(Cordoba), 그라나다(Granada) 등을 품고 있다. 천재적인 건축가 가우디(Gaudi)의 작품을 품고 있는 바르셀로나(Barcelona)나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Madrid)도 유명하지만, 스페인의 정수를 느끼려면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 안달루시아를 찾아야 한다!


image.png 스페인 지도와 안달루시아 (출처: https://kr.123rf.com)


image.png 안달루시아 지역 (출처: https://www.tripsavvy.com)


그중에서도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Alhambra Palace)은 단연 압권이었다. 너무나 유명한 곳이고 사진이나 화보로도 많이 접했던 곳이지만, 실제 방문해서 바라본 그곳의 아름다움은 내가 이제까지 보았던 그 어떤 건축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인 것이었다.


그라나다는 기원전 200년경 로마 공화국에 정복된 후로 일리베리스(Iliberis)로 불렸다. 기원전 44년, 일리베리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에 의해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8세기 초 북아프리카 지역의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 지역을 점령한 후 약 5 백여 년간 통치하였다.


하지만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왕국들이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영토를 다시 회복하자는 '레콩키스타'(Roconquista) 활동을 전개하였다. 1085년 카스티야의 왕 알폰소 6세가 톨레도(Toledo)를 함락시키면서 이슬람 세력은 조금씩 약해졌다. 이후 1236년에는 코르도바가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3세에게 점령당했다.


그런데 이 무렵인 1232년 나스르 왕조(Nasrid dynasty)가 그라나다에 들어섰다. 초대 왕인 무함마드 1세는 궁전을 지을 장소를 찾던 중 오늘날의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고지대를 발견하였다. 고도 740 미터의 절벽에 위치한 이곳은 그라나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으며, 뒤쪽으로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자리 잡고 있어 천혜의 요충지였다. 궁전의 건설은 나스르 왕조 시기에 계속 진행되어 1492년까지 진행되었다.


image.png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알람브라 궁전 (출처: https://ko.wikipedia.org)


1248년 세비야도 카스티야에게 점령당하였다. 하지만 그라나다는 그 후 200여 년간 존속하였으며, 알람브라 궁전 역시 왕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변모해 나갔다.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의 결혼으로 이베리아 반도에는 카스티야-아라곤 연합왕국, 즉 스페인이 탄생하게 되었다. 1492년 1월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2세는 그라나다에 입성해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인 무함마드 12세의 항복을 받아냈다. 19세기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 P. 오르티즈(Francis P. Ortiz, 1848-1921)의 작품 '그라나다 함락'(The Surrender of Granada)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떠올릴 수 있다.


image.png <그라나다 함락> (출처: https://ko.wikipedia.org)


오른쪽 백마를 타고 있는 이가 이사벨 여왕이고 붉은 옷을 입은 이는 그녀의 남편인 페르난도 2세이다. 그리고 왼쪽 검은 말을 타고 있는 이가 무함마드 12세인 보압딜이다. 무함마드 12세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았던 아름다운 알람브라 궁전을 이사벨 여왕 부부에게 넘긴 후 가족들과 함께 모로코로 떠났다.


그라나다 출신의 스페인 화가 마누엘 곤잘레스(Manuel Gomez-Moreno Gonzalez, 1834-1918)의 그림 '알람브라를 떠나는 보압딜 가족'에는 당시의 슬픔과 패배감이 생생하게 잘 담겨 있다. 특히 보압딜은 그라나다를 뺏긴 것보다 알람브라 궁전을 버리고 떠난다는 사실에 더 절망했다고 한다.


image.png '알람브라를 떠나는 보압딜 가족' (출처: https://www.myartprints.co.uk)




알람브라 궁전은 크게 4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망이 좋은 요새인 알카사바(Alcazaba), 왕이 거주하던 나스르 궁전(Palacios Nazaríes), 아름다운 정원과 분수가 있는 헤네랄리페(Generalife), 그리고 후대에 스페인의 카를로스 5세가 지은 궁전이 있다. 특히 나스르 궁전과 헤네랄리페가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먼저 나스르 궁전의 중정을 지나면 왕의 집무실인 메수아르 궁(Palacio de Mexuar)이 나온다. 메수아르는 '협의회 장소'를 뜻하는 공간으로, 과거 왕과 신하들이 국정 회의를 열었던 곳이다. 내부에는 아라베스크 문양의 타일로 장식된 벽과 석회 세공으로 된 정교한 벽면을 볼 수 있다.


cddae7c0-8840-47c9-8e16-72dcb4f2d5b3.jpeg 메수아르 궁 (출처: https://triple.guide)


'대사의 방'(Salón de los Embajadores)은 그라나다를 방문한 외국의 대사들이 왕을 알현하던 장소이다. 28미터 높이의 어두운 천장에 마치 별자리처럼 문양이 새겨져 있고 벽면 장식도 너무나 섬세했다. 이슬람교에서는 사람과 동물을 숭배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이슬람의 건물 벽면에는 인물화나 동물 그림 대신 기하학적인 코란의 문구나 꽃과 나무들의 문양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Hall-of-the-Ambassadors-Seville-Alcazar.jpg '대사의 방' 벽면과 천장 (출처: https://alcazarseville.com)


유명한 '사자의 중정'(Patio de los Leones)은 큰 중정을 사이에 두고 사방이 회랑으로 되어 있는 공간이다. 건물마다 대리석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데 그 수가 124개라고 한다. 여기도 섬세하고 정교한 무늬가 기둥 위로 반복되어 나타난다.


사자의 중정은 하렘(harem)이다. 즉 왕과 왕을 위한 여자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왕 이외의 남성은 출입할 수 없는 공간이다. 사람과 동물을 숭배하지 않는 이슬람교의 특성에 비춰볼 때 이곳의 사자 석상은 조금 의외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석상은 그라나다에 거주하던 유대인 12개 부족의 대표들이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1342712-patio-de-los-leones-alhambra-granada.jpg 사자의 중정 (출처: https://www.audleytravel.com)
image.png 왕궁 내부에서 바라본 사자의 중정 (출처: https://namu.wiki)


'두 자매의 방'(Sala de las Dos Hermanas)은 흔히 예상하듯이 실제 두 자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방의 바닥에 깔려있는 2개의 큰 대리석 판석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보통 이곳은 왕비가 거주하는 곳이었다. 특히 레이스를 겹겹이 댄 듯한 벽과 천장의 무카르나스(Muqarnas) 장식은 너무나 정교하고 화려해서 눈을 떼려야 뗄 수 없었다.


무카르나스(Muqarnas)는 이슬람 건축에서 돔, 펜던티브(평면 벽과 둥근 돔 사이의 전환부), 벽감, 처마 등에 사용되는 종유석 또는 벌집 모양의 3차원적 기하학 장식을 일컫는다. 주로 석고(회반죽)나 세라믹 등으로 만드는데, 작은 요소들이 계단식으로 층층이 겹쳐지는 형태이다. 무카르나스는 단순히 천장 장식을 넘어서, 이슬람 기하학의 3차원적 표현이자 구조적 안정감을 주는 건축의 핵심 요소라고 한다(위키피디아 참조).


image.png 두 자매의 방 (출처: https://www.alhambradegranada.org)
dpp_1713v2.jpg '두 자매의 방'의 무카르나스 천장 장식 (출처: https://lightslant.wordpress.com)ㅁ


나스르 궁을 둘러싸고 있는 헤네랄리페는 13-14세기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정원으로,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꽃, 그리고 분수와 수로가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이곳은 왕과 그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었으며, 과수원도 있어서 다양한 과일을 생산해 내는 곳이기도 하였다. 고지대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근 다로(Darro) 강에서 시작되는 운하를 통해 풍부한 물을 끌어들임으로써 사시사철 아름답고 비옥한 정원과 과수원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슬람 문화에서 물은 신성함, 정화, 생명, 그리고 알라(Allah)의 자비를 상징하는 핵심 요소라고 한다. 특히 사막 지역에서 비롯된 이슬람교의 특성상 물은 종교적 의식과 일상생활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헤네랄리페 곳곳에 분수와 수로가 조성되어 있는 이유이다.


image.png (출처: https://www.spantour.com)
adf09da8c75a1d3007beb9b1874a7761-alhambra-12.jpg 헤네랄리페 곳곳에 물길과 분수가 있다 (출처: https://www.headout.com)
Spain-Granada-Alhambra-Generalife-1440x961.jpg 헤네랄리페 정원과 나스르 궁전 (출처: https://www.encirclephotos.com)


알람브라 궁전은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으로 지정되었다.


알람브라 궁전은 아름다운 클래식 기타 연주곡도 탄생시켰다. 스페인의 기타리스트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árrega)가 1899년 알람브라 궁전을 여행한 후 함께 동행했던 자신의 후원자 '콘셉시온 고메즈 데 자코비'(Concepción Gómez de Jacoby)를 위해 작곡한 '알람브라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이 그것이다. 트레몰로 기법이 인상적인 아름답고 서정적인 연주곡이다.


francisco-tarrega-guitar-composer.jpg 프란시스코 타레가 (출처: https://richterguitar.com)


언젠가 다시 스페인을 찾게 된다면, 나의 첫 선택지는 단연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