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러시아는 아직도 방문하기에 만만치 않은 나라이다!
2천 년 대 중반 자주 참가하던 한 국제학술대회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개최되었다. 아직 가보지 않은 나라, 그것도 사회주의 국가인 러시아를 공식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발표 논문을 준비하였고 초청장을 받았다. 방문 비자를 받기 위해 러시아 영사관을 방문하였는데, 다소 경직된 분위기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다행히 비자를 받아 러시아 아에로플로트(Aeroflot) 항공기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했다. 긴 운항 시간 후 비행기가 상트페테르부르크 풀코보(Pulkovo) 공항에 미끄러지듯이 부드럽게 착륙하자 뒷좌석에 무리 지어 앉아있던 프랑스 고등학생들(아마 수학여행을 온 것 같았음)이 큰 환호성과 박수갈채를 보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착륙은 너무나 완벽한 것이었다!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그만큼 부드럽게 지면에 비행기를 착륙시키는 사례를 겪어보지 못했다. 입국 절차를 받기 위해 공항 내부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서 있는 군인들과 경찰관들이 보였고 방문객들을 맞는 태도가 고압적이었다. 여권과 비자를 보여주며 무사히 입국에 성공하였다.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되는 장소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 있는 마린스키 극장(Mariinsky Theater)이었다.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Bolshoi Theater)과 더불어 러시아 예술의 정수로 평가받는 곳이다. 1860년 미하일 글린카(Mikhail Glinka)의 오페라 <차르에게 바친 목숨<(A Life for the Tsar)을 공연하면서 개관한 곳으로, 크리스털과 도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무대와 객석이 유명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가인 넵스키 대로(Nevsky Avenue) 주변으로 유럽풍의 화려한 건축물들이 펼쳐져 있었으며, 거리를 지나다니는 러시아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분위기 또한 세련되고 활달하였다. 이전까지 내가 갖고 있던 러시아에 대한 선입견이 와르르 무너졌다. 학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주로 시내를 중심으로 걸어 다니며 거리 분위기를 느꼈다. 도저히 읽을 수 없는 키릴 문자가 가득한 도심을 누비는 기분이란!
상트페테르부르크!
이 매혹적인 도시는 18세기 러시아의 차르 표트르 대제(Pyotr I, 1682-1725)가 러시아의 유럽화를 부르짖으며 모스크바의 남쪽에 새로 만든 수도이다.
표트르 대제는 20대 중반이던 1697년 250여 명의 사절단을 데리고 스웨덴과 프로이센, 독일 지역의 여러 국가들을 거쳐 네덜란드와 잉글랜드까지 방문해 새로운 문물을 습득하였다. 1년 반 동안 유럽 국가들을 방문하면서 특히 네덜란드에서 5개월, 그리고 잉글랜드에서 4개월을 머무르며 해양과 조선업에 대한 첨단 지식을 배웠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조선업 중심지인 잔담(Zaandam)에서 직접 목수 일을 배웠으며 스스로를 '잔담의 목수'라고 칭했다.
러시아 제국보다 더 발전한 유럽 국가들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가 강국으로 발전하려면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다. 그는 1703년 발트함대를 창설하였으며 1704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큰 조선소를 만들어 수많은 함선들을 생산하도록 했다. 나아가 1713년 표트르 대제는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지정하였으며, 네바 강 하구 수도 건설에 많은 외국 건축가들이 참여하였다.
수도를 옮긴 후 러시아의 교역량은 이전에 비해 수십 배로 늘었으며, 바르샤바에만 설치하였던 러시아 대사관도 세계 여러 곳에 생겼다. 유럽식 개혁을 표방하던 표트르 대제는 나아가 러시아인들의 전통 복장도 서구식으로 바꾸었으며, 길게 기르던 러시아 남성들의 수염 역시 유럽식으로 짧게 자르도록 했다. 적극적으로 유럽의 문물을 수용하는 정책을 실시한 결과 러시아는 유럽의 주변부 국가에서 벗어나 차츰 주도적인 국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1918년 3월 5일 수도를 다시 모스크바로 옮길 때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수도였다.
학회가 끝나자마자 본격적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탐색을 시작하였다. 가장 방문하고 싶었던 곳은 에르미타주 박물관이었다.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에 꼽히는 곳으로 약 3백만 점이라는 막대한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구 에르미타주와 신 에르미타주, 겨울 궁전과 에르미타주 극장 등 5개의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겨울 궁전'은 로마노프 왕조 시대의 황궁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기원은 1764년 예카테리나 2세(Еkaterina II, 1729-1796)가 미술품을 수집하면서 비롯되었다. 앞서 언급한 표트르 대제와 더불어 러시아의 근대를 만든 여황제 예카테리나 2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프로이센과 스웨덴 접경 지역에 있는 안할트-체르프스트 공국에서 소피 프리데리케(Sophie Friederike) 공주로 태어났다.
표트르 대제의 친딸이었던 엘리자베타 여제(Elizaveta Petrovna, 1709-1762)는 프로이센에서 자란 조카 카를 울리히(Karl Peter Ulrich)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고 그 배필로 소피를 점찍었다. 소피는 러시아어 교육도 받고 1744년 러시아 정교회 신자로 개종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엘리자베타 여제의 어머니인 예카테리나 1세(Еkaterina I)를 기리는 뜻에서 ‘예카테리나’라는 새 이름을 받게 된다. 그녀는 16세 때 카를과 결혼한다.
1762년 엘리자베타가 병으로 사망하자 예카테리나의 남편 카를이 표트르 3세(Pyotr III)로 즉위해 로마노프 왕조의 제7대 황제가 되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프로이센과의 유화 정책을 밀어붙이다 귀족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 반면 예카테리나는 프로이센 출신이었지만 러시아에 대한 깊은 사랑과 천부적인 명석함으로 러시아 귀족층은 물론 국민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결국 표트르 3세는 즉위 6개월 만에 황실 근위대의 도움을 받은 왕비 예카테리나 주도의 쿠데타로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다.
예카테리나 2세는 1796년 사망할 때까지 34년 동안 성공적으로 러시아 제국을 통치하였다. 그녀는 재위 동안 여러 차례의 전쟁과 외교 정책을 통해 오스만 튀르크 제국과 폴란드로부터 막대한 땅을 확보해 러시아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예카테리나 2세는 문화 정책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교육과 문학을 장려하는 한편 발레와 연극 등도 활성화시키려고 애썼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시작은 예카테리나 2세가 1764년 베를린의 미술상인 요한 에른스트 고츠고프스키(Johann Ernst Gotzkowsky)를 통해 유럽의 미술품들을 사들여 자신의 전용 미술관을 만든 데서 비롯한다. 여왕은 프랑스어로 '은둔자'를 의미하는 에르미타주라는 이름을 붙인 자신의 궁전에서 왕족과 귀족들을 초대해 그림을 감상하였다.
이 시기 사들였던 예술품 가운데는 렘브란트(Rembrandt)의 회화 13점을 비롯하여 보티첼리(Botticelli), 라파엘(Raphael), 반 다이크(Van Dyck) 등의 작품들이 있다. 예카테리나 2세는 2 천여 점 이상의 미술품을 수집함으로써 당시 유럽의 유서 깊은 여느 박물관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을 확보하였다. 이후 그녀의 뒤를 이은 황제들도 계속 예술품을 모았으며, 러시아 예술품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바로크, 인상주의 시대의 예술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의 경우 소장품의 상당수가 제국주의적 침략 과정을 통해 이집트나 그리스, 중동 국가들로부터 불법적으로 약탈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비교해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채우는 막대한 예술품들의 경우 대부분 러시아 왕실이 유럽 미술상으로부터 사들였으며 약탈 문화재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한다.
왕실의 소유였던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이 발발한 직후 국가 소유의 박물관으로 바뀌어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었다. 비록 예카테리나 2세 자신의 전용 예술품 전시공간으로부터 출발하였으나 결과적으로 그녀가 사들인 엄청난 예술품들은 세계 어느 박물관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형성하였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찬란한 황금빛과 붉은 카펫이 깔려있는 화려한 궁정 연회장 계단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또한 라파엘의 그림을 흠모한 예카테리나 2세가 이탈리아의 건축가 쟈코모 콰랭기(Giacomo Quarenghi)에게 의뢰해서 만든 라파엘 복도(The Raphael Loggias) 역시 형식화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러시아 화가들의 회화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현대 화가들의 작품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마티스의 <춤>은 그림의 규모도 크거니와 강렬한 색감과 구도 때문에 매우 기억에 남았다. 고흐나 피카소의 작품들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박물관을 찾는 일,
그건 걷고 또 걷고, 보고 또 보는 엄청난 노동과 에너지를 요구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역시 대영 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 못지않은 규모 때문에 관람하기가 쉽지 않다. 엄청나게 많은 소장품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보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한다면 반드시 에르미타주를 찾아야 한다.
유럽의 여느 박물관에 뒤지지 않는 예술품 컬렉션을 보유하기 위해 애썼던 유럽 변방의 러시아 여황제 예카테리나 2세, 그리고 그녀의 '문화적 콤플렉스'가 만든 결과물 에르미타주!
오늘도 여전히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게 만드는 매혹적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