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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루카 Dec 06. 2021

아퀴나스와 우주론적 논증

https://youtu.be/TgisehuGOyY를 번역했습니다.


신의 존재 증명만큼 인기가 높은 대화 주제는 없습니다. 우리의 영상 이전 화 댓글창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죠. 캔터베리의 안셀무스가 딱 여러분과 같았습니다. 그는 11세기에 나타나서 신의 존재를 유추할 방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존재론적 논증'이라고 알려진 것을 통해서 말입니다. 중세 기독교 철학자들에게 SNS가 있었다면 이 소식에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졌을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말이죠.


200년 후 이탈리아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도 안셀무스의 논증을 접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퀴나스가 신을 믿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철학자였던 그는 믿음에 증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왕 이렇게 된 거 안셀무스의 논증을 거부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본인이 더 나은 논증을 고안해야겠다고 나서기까지 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최종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다섯가지 논증을 준비합니다. 그렇습니다, 딱 다섯가지였습니다. 그는 한가지 논증만으로는 부족한 반면, 다섯가지 논증을 준비한다면 그 중 하나쯤은 들어맞으리라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퀴나스의 첫 네가지 논증을 우주론적 논증이라 합니다. 우주에 분명히 있는 사실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때문이죠.

이제부터 우리는 첫화에서 소개했던 방법대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첫 네가지 논증을 살펴보고, 또 탐구해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해당 논증의 강점과 약점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죠.


운동을 통한 증명


현대인의 눈에 아퀴나스의 우주론적 논증이 놀라운 이유는 그것이 일부분 자연에 깊이 의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퀴나스는 과학이 그다지 발전하지 않은 시대에 살았음에도 그가 그나마 과학이라고 믿었던 것, 객관적 증거라고 믿었던 것을 통해 신의 존재를 논증했습니다.


이는 그의 우주론적 논증 첫번째가 '운동을 통한 증명'이라는 점에서 잘 나타납니다. 아퀴나스는 여기서 우리가 만물이 움직이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일으키는 실체를 운동자라고 부릅니다. 아퀴나스는 운동하는 모든 것들이 다른 운동하는 것들에 의해 움직임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이 같은 논리에 따르면 처음부터 운동이라는 현상을 촉발한 뭔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철학자들이 '무한후퇴'라고 부르는 난국에 빠질 것입니다.


무한후퇴란 어떤 존재에 선결된 근거를 줄줄이 유추하지만 결국 출발점에 도달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아퀴나스는 기본적으로 무한후퇴 자체가 비상식적이며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무한후퇴하는 현상이 있다면 그 현상이 사실상 무로부터 시작했다고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예 시작 자체가 없었다고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과거로부터 쭉 진행되고 있었을 테니까요.


아퀴나스는 세상에서 관찰되는 객관적 운동의 출발점을 추적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출발점의 존재를 확신했습니다. 안 그렇다면 연달아 쓰러지는 도미노는 있는데, 첫 도미노 조각을 넘어뜨린 원인이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니까요. 도미노의 연쇄 작용이 무한한 과거로부터 쭉 진행되고 있었을 테니까요.


아퀴나스는 움직임이 없었던 시기가 존재했을 것이고, 또 최초로 움직임을 시작한 부동의 존재가 있었을 것이라 추정했습니다. 그리고 아퀴나스에 따르면 그 부동의 원동자는 신입니다.

따라서 아퀴나스의 운동을 통한 증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물들은 움직인다. 움직이는 모든 사물은 다른 무언가에 의해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운동인의 무한후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부동의 제1동자라는 존재가 상정될 수밖에 없다. 그 존재가 신이다.


능동 원인을 통한 증명


아퀴나스의 두 번째 우주론적 증명은 첫 번째와 유사합니다. 그는 능동 원인을 통한 증명을 전개하는 동시에, 앞선 증명과 마찬가지로 무한후퇴의 여지를 제거했습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우주에 보편적으로 걸쳐진 사물의 운동을 설명하는 대신 인과(因果)를 설명했다는 사실입니다.


논증의 전개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일에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은 또다른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원인 없는 원인은 없기 때문이다. 원인에는 무한후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어떤 원인에 구애받지 않은 제1원인이란 게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존재가 신이다.


운동을 통한 증명과 마찬가지로 이번 증명도 논지는 간단합니다. 작용에는 원인이 존재합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이 영상을 보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거기에 이르는 과정들을 순간순간 단위로 추적해 볼 수 있겠죠. 그러다 생각이 길어지면 꽤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아퀴나스는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그 과정이 무한한 과거까지 이어질 수 없다고 말이죠. 인과의 사슬이 있으면 그 출발을 실현한 제1존재가 있을 것입니다. 그 존재가 바로 신입니다.


우연성을 통한 증명


세 번째는 우연성을 통한 증명입니다. 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에 앞서 약간의 배경부터 짚고 넘어갑시다.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필연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을 구분할 일이 많습니다. 우연적인 존재는 간단히 말해 존재하지 않을 수 있었을 존재입니다. 여러분도 이에 포함됩니다. 물론 여러분은 존재하기는 하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존재입니다.


세상은 여러분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잘 굴러갑니다. 물론 여러분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되겠지만, 아무튼 세상은 굴러갑니다. 우연한 것은 다른 것 없이 존재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특정한 정자와 특정한 난자가 만나 유전자를 섞지 않았으면 이 세상에 없었을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어쩌다 터진 행운에 의해 존재하는 셈이죠.


그런데 이 얘기가 신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아퀴나스는 우연성에 대해서도 무한후퇴를 허용하지 않는 어떤 존재가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는 우연히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존개 근거를 쭉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는 우연한 것들만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랬다가는 모두가 없어도 되었을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퀴나스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작동시키도록 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영영 존재할 것이고,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 최소한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필연적인 존재가 신입니다.


아퀴나스는 우연성을 통한 증명을 다음과 같이 전개합니다:


우연적인 것이 있다. 우연적인 것은 또다른 우연적인 것을 발생시킬 수 있지만, 세상에 우연적인 것만 있을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우연의 무한후퇴가 참이 되고, 세상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 또한 부정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무한후퇴는 참일 수 없다. 그러니 필연적인 것 하나는 있어야 한다. 그 존재가 신이다.


여러분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다음 논증을 위해 몸풀기를 해 보죠.


등급에 의한 증명


이번 증명은 우리에게 도구만 갖고 있으면 물건의 속성을 측정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좋고 나쁨, 크고 작음, 뜨겁고 차가움 등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밖에 나가 산책하며 크기가 이 정도 되는(양손을 가슴너비만큼만 벌린다) 동물을 봤는데, 그게 개라면 작은 개로 여겨질 것이고, 쥐라면 큰 쥐로 여겨질 것입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우리가 사물의 크기를 다른 사물에 빗대서 재단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원리가 보다 추상적인 개념에도 적용됩니다. 여러분의 성적처럼 말이죠. A가 왜 좋을까요? 맨 꼭대기에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A보다 낮은 성적은 있어도 보다 높은 성적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퀴나스는 완벽함으로 인해 기준이 되는 어떤 것, 그리고 다른 속성들을 결정짓는 어떤 것이 없으면 우리가 속성이라고 여기는 개념 모두가 허공에 아무렇게나 떠다닐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상하셨듯 그 어떤 것이 신입니다.


이게 바로 아퀴나스의 네 번째 증명인 등급에 의한 증명입니다:


속성에는 등급이라는 것이 있다. 완성도에 등급이 있다면, 그 등급의 측정 기준이 되는 완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완성의 정점에는 신이 있다.


총평


자, 여기까지가 아퀴나스의 네 가지 우주론적 증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수업의 1단계만 지나왔다는 점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이제 철학 수업에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총평단계로 넘어가 봅시다.


논증의 평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논증에서 결함을 발견한 철학자라면, 어떤 점이 왜 잘못되었는지도 규명해야 합니다.


네 가지 우주론적 논증을 접한 철학자들은 신앙인, 무신론자 할 것 없이 대체로 감흥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문제가 많이 발견되었던 것이었죠. 일단 아퀴나스의 논증으로는 어느 신이 특정되었는지 알 길이 없어 보입니다. 설사 논증이 옳더라도 아퀴나스의 신은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 주는 인간적이고 자애로운 신과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숭배했던 신, 그리고 창조물에 감정을 느끼거나 기도에 응답하는 신은 없고 부동의 원동자, 그리고 그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원인제공자만이 있을 뿐이죠. 근본적으로 아퀴나스의 신은 신앙인들이 믿는 신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존재 증명의 동기가 떨어집니다.



물론 신적인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죠. 하지만 그 존재가 여러 명이라면? 애석하게도 아퀴나스의 논증으로는 다신론을 논파할 수 없습니다. 그의 논증 중 신이 하나의 조직일 가능성을 반박할 대목이 없는 셈이죠.



아퀴나스의 논증으로는 지각력 있는 신의 존재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신은 수염 기른 노인 한 명일 수도, 여섯 명일 수도 있는 한편, 달걀, 거북이, 거대한 바위 중 하나일 수도 있죠. 이 점 때문에 철학자 몇몇이 아퀴나스의 결론에 불편함을 표시했습니다. 아예 그 중 몇 명은 아직 결정타 두 가지가 남았다고 주장하기까지 하죠.


일단 무한후퇴가 있을 수 없다는 아퀴나스의 전제부터가 틀렸다고 합니다. 아퀴나스는 물체의 운동이든, 인과든, 우연적인 존재의 창조든 모든 일에 당연히 시작이 있을 거라 단정짓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참인지, 왜 참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무한후퇴가 가능하다면 아퀴나스의 첫 두 가지 논증은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도 아퀴나스의 증명에 내려진 가장 치명적인 죄목이라면 스스로 반박이 가능하단 것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틀렸음을 밝힐 수 있다는 뜻이죠. 이를테면 아퀴나스의 말대로 정말로 만물의 운동이 다른 운동에 의해 촉발되었다면 신도 같은 규칙을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이죠. 만일 신이 모종의 이유로 이 규칙에서 면제받은 것이라면 신 외의 존재라고 면제받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그 존재가 신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애초에 신의 창조가 필요 없을 수도 있었겠죠.


결론


아무래도 제가 여러분께 생각할 거리를 많이 드린 듯합니다. 수업을 마치기 전에 잠깐 숨을 고르고 몇 가지를 되짚어 봅시다. 우선 우리는 결론에는 동의하되 논증에 반대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퀴나스의 말대로 신의 존재에는 동의하는데, 그의 논증이 유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 다음 단계에서 "우리는 논증에 동의하지 못하겠으니 당신이 틀렸다"라고 말하는데 그치면 안 되겠죠. 이 때는 반박을 해 줘야 합니다. 아퀴나스의 어떤 점이 틀렸는가? 나는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내 대안이 그의 것보다 나은 이유가 무엇인가?


명심하세요. 철학은 변증법 과정을 따릅니다. 물론 아퀴나스가 고인이 된 지는 수 세기가 흘렀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여러분은 논증을 평가함으로써 대화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아퀴나스를 도와 그의 결론을 보강하며 결함을 정정해 주거나, 아니면 아예 모두 뒤집을 목적으로 여러분 본인의 의견을 내 볼 수 있겠죠.


중요한 문제를 놓고 대화에 참여하는 것, 이게 바로 철학적 사고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의 존재 여부는 나름 중요한 문제인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신앙인들의 입장에서 더더욱 그렇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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