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흔들리고 있는 게 보였다. 헤어지자고 말하던 날, 그렇게 냉정하고 단호하던 사람이 며칠 만에 보내온 말들은 낯설 만큼 조심스럽고, 미련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도 지금 아파하고 있고, 불안해하고 있고, 결정은 했지만 여전히 나를 놓지 못하고 있구나 그런 직감이 들었다.
처음엔 따지고 싶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냐고, 이별을 말한 건 그였고, 나는 겨우 그걸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왜 이제 와서 날 또 흔드는 거냐고. 왜 다시 아프게 하냐고. 하지만 또 다른 마음은, 그를 붙잡고 싶었다.
지금 잡으면 잡힐 것 같았다. 그의 말투, 타이밍, 흔들리는 기색… 모든 게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보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뛰어가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그 품은 언제나 나의 안식처였으니까. 예전의 나였다면, 이렇게 마음이 흔들릴 때 바로 그에게 달려갔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그렇게 돌아가면 또 아플 거라는 걸. 다시 상처 입을 걸 알면서도 그 품이 그립다고 돌아가는 일, 이젠 멈추고 싶었다.
물론, 정말 간절하게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를 다시 붙잡는 건 나의 무너진 마음에 그를 또다시 가두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미 지쳐 있었고,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를 향한 내 사랑은 여전했지만 그 사랑이 더 이상 따뜻한 온기가 아닌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 것 같아, 그를 더 붙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침묵했다. 나를 위한 침묵이 아니라, 그를 위한 마지막 배려이자, 지금으로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별을 받아들인 나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그가 없는 세상을 천천히 상상해 봤다.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하나씩 정리했고, 작은 일 하나라도 스스로 해냈을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나, 생각보다 약하지 않구나.’
‘그동안은 내가 나를 못 믿어서 그랬던 거구나. 내가 나를 온전히 믿어준다면, 나 꽤 강한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이제는 내 마음을 먼저 지키고 싶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야만 살아있는 게 아닌, 나 스스로를 지키면서 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