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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르티아 Jul 18. 2020

그래도 당신에게 주식투자를 권하는 이유

주변에서 최근 주식투자에 흥미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대부분의 이야기 흐름은 이렇다.


친구: "뉴스 보니까 동학개미운동이라고 얘기 많이 나오던데, 들어봤어?"

나: "그래 맞아. 그런 거 보면 한국사람들 돈 없는 게 아니라니까."

친구: "그러게 말야. 셀트리온은 뭐 2배 올랐다고 하고, 테슬라는 5배 올랐다고 하고.."

나: "오~ 잘 아는데? 너도 주식투자 시작했어?"
친구: "(뜨끔) 나? 나는 뭐 안 하지.. 너무 위험하잖아? 그냥 관심있어서 유튜브만 몇개 찾아보는 중?"

나: "아 그렇구나."


모르긴 몰라도, 이렇듯 미세한 동요가 느껴지는 친구들 대부분은 이미 주식을 시작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다. '샤이개미'라고 할 수 있으려나? 주변에서 들려오는 성공담에 나도 뒤쳐지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여윳돈을 만지작거리는 친구들도 종종 보았다. 주식투자 관심도가 높아진걸 체감하는 요즘이다.


존 리 대표가 유퀴즈에 나올 정도니까.

나도 개인적으로 주식이든 뭐든 직접 자기 돈으로 투자를 해보길 권하는 편이다. 흔히 말하는 저금리 시대에 적금만으로는 돈 모으기 어려워졌다든지, 경제적 자유라든지 하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애초에 직접투자로 돈을 버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며, 잃지 않기만 해도 중간 이상은 가는게 투자이기 때문이다. 변동성이 높고 상시적 저평가에 시달리는 한국 자본시장이라면 더 그렇다.


개인투자자 중 40%는 매년 돈을 잃는다. (출처: 서울신문)


그럼에도 나는 투자를 권한다. 그 자체로 배울 수 있는게 참 많기 때문이다. 투자는 돈을 불려나가는 노력이다.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이나 자기계발 같은 익숙한 노력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벌든 잃든, 자기 돈을 투자하여 시장에서 굴려보는 것 자체가 색다른 경험이고 해볼만한 지적유희다.


내가 생각하는 투자에서 배울 만한 것들은 크게 다음 요소들이다.


# 1. 실전형 경제공부

고시, 공기업, 심지어 사기업 공채에서도 우리는 경제를 시험으로 접하는 경우가 많다. 책으로만 배운 경제학 개념들은 사실 현장에서는 별 쓸모가 없다. 고시공부만 몇 년씩 해서 들어온 경제관료보다 직접 거리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사업을 일구는 사장님들이 훨씬 실물경제에는 빠삭한 법이다. 투자는 정답 맞추기가 아니라 일종의 사업에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가치투자는 내가 직접 돈을 내고 기업의 일부를 인수하여 운영하는 모의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자기 돈을 내고 투자를 하게 되면 음료수를 사먹어도 평소엔 관심 없던 제조사를 확인하게 되고, 여자친구가 자랑하는 네일용품 브랜드가 상장기업인지 검색하게 된다. 교과서에서 다뤄지지 않는 개별 기업의 스토리, CEO의 중요성과 기업 지배구조, 재무제표 보는 법, 소비시장의 트렌드를 몸소 접할 수 있다. 글로 몇 년을 배워도 안 와닿던 개념들이 며칠만에 쏙쏙 이해되기 시작한다. 지나치게 일상을 갈아넣지만 않는다면 투자는 고루한 시험경제학에서 벗어나 기업과 산업, 혁신과 성장을 배우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 2. 최고의 멘탈 훈련 

시장은 비정한 공간이다. 공부나 운동과 달리 근면성실이 성과를 담보해 주지 않는다. 한 순간의 손실로 그동안의 수익을 한 번에 날리는 일은 부지기수다. 아무리 간절하게 원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수익률 1%를 올리기가 쉽지 않다. 똑똑한 이들이라고 다를까? 아니, 오히려 지나친 똑똑함 때문에 사물을 투명하게 보는 대신 자신만의 이론이나 신념에 스스로 속아넘어가기 일쑤다. 피터 린치의 말처럼 말이다.

최상의 투자자는 IQ 상위 3%와 하위 10% 사이에 분포한다.
천재는 이론적인 사고에 지나치게 골몰해서 오히려 기만당하기 쉽다.
주식의 움직임은 천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단순하다.  -피터 린치


나도 스스로 인지하진 못했지만 암암리에 내 투자방식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코로나 쇼크를 처음 맞은 올 2월까지도 타격은 있었지만 나름 선방하고 있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만 깊어가던 3월, 드디어 밑천이 드러나고야 말았다. 유가 폭락과 코로나가 겹치며 일주일만에 계좌가 반토막이 난 것이다.  

말이 반토막이지, 막상 밑천이 털리고 나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으면 쳐다도 안 보던 '마음다스림 명상' 어플까지 깔았을까. 하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지금이 말로만 듣던 폭락이라면, 진짜 기업의 가치가 떨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시장의 과잉반응 때문이 아닌가? 내가 분석한 가치가 완전히 틀린게 아니라면 오히려 저가매수의 기회 아닌가?'  


그 이후로 나는 일부러 거래건수를 줄이고, 여유자금으로 조금씩 물타기를 했다. 코로나 이후 펀더멘털이 흔들릴 것 같은 기업은 조금씩 비중을 줄이고 오히려 수혜를 입을 기업들은 비중을 늘려갔다. 불안정한 심리와 뉴스로부터 내 선택을 분리시키기 위해 매매가 가능한 기기를 일부러 집에 놓고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계좌는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글을 쓰는 지금은 코로나 이전보다 높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위기는 항상 기회와 동전의 양면이다. 코로나는 비록 위기였지만, 매일매일의 소음을 차단하고 본질(=기업가치)에만 집중하면서 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다보면 길은 열린다는 것을 학습하게 된 좋은 기회였다. 특히나 인생에서 크게 실패를 경험해 본 적 없는 범생이들에게 투자는 좋은 배움터가 된다.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을 깨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시장이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투자를 통해 나는 위기와 기회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그렇기에 항상 포기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몸소 배울 수 있었다.  


# 3. 밑천을 불려나가는 재미와 효능감

투자를 하게 되면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자기자본, 즉 '밑천'의 중요성을 깊게 깨닫게 된다. 흔히 투자에서 종목 선택이나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투자 성패의 60% 이상은 자금 조달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산 = 부채(남의 밑천) + 자본(나의 밑천)


투자자금의 조달은 기본적으로 부채와 자본으로 이뤄진다. 부채는 말 그대로 빌린 돈이다. 부채가 있어야 사업도 크게 벌일 수 있고, 자본수익률도 높일 수 있다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난 부채를 좀 다르게 정의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부채:

- 남으로부터 빌린 돈: 말 그대로 남이 빌려준 돈

- 남으로부터 빌린 지혜: 정규 교육과정, 세간의 상식, 소위 전문가의 분석, 뉴스기사, 찌라시

 

부채는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다. 남의 돈과 남의 지혜로 살면 충분히 만족하기 어렵고 불안하다. 잘 돼도 내 몫이 아닌 것 같고, 잘 안 되면 괜히 남을 원망하게 된다.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이 '안정적 고수익'이라고 해서 철썩같이 믿었던 선택지들이 생각과 다를 때의 배신감과 좌절감은 이루 설명할 수 없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남의 돈과 남의 지혜로 투자하면 올라가면 좋지만 조금만 내려가도 버티기 힘들고 원망스럽다. 나 역시 여유자금 이상의 돈으로 투자를 하거나 남의 아이디어, 남의 분석글에 의존하여 투자를 한 적이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내 투자는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하루하루 불안했다.


반면, 자본은 온전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자산이다. 자본(資本)은 말 그대로 '뿌리'다. 허울을 모두 걷어내고도 끝끝내 내게 남아있는 밑천이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게 해주는 나만의 역량이다. 강호동이나 신동엽 같은 연예인이 한 번 망하더라도 몸에 내재된 캐릭터와 진행능력이 있으면 언제든 부활할 수 있듯, 자본은 그 자체로 투자를 계속할 수 있는 배짱의 근원이자 출발점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자본:

- 내가 저축해서 모은 여유자금, 종잣돈(=안 갚아도 되는 돈), 확실한 고정수입

- 나만의 경험, 직접 발품을 팔고 공부해서 얻은 고유지식, 어디 가서도 써먹을  있는 기술


투자를 하면 내 자본, 내 밑천의 소중함을 자각하게 된다. 낮아져만 가는 은행이자만 믿고 수동적으로 내 소중한 돈을 맡겨놓는 대신 시장에 내 밑천을 판돈으로 걸게 되면 세상을 보는 느낌이 달라진다. 일종의 사업가처럼 적극적으로 자본을 키워나가는 재미에 눈뜨게 된다. 진짜 내가 가진 돈이 얼마인지를 점검하고 합리적으로 소비를 통제할 유인이 생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공부를 시작하고 기회를 찾아헤매기 시작한다. 내가 내 인생의 소비자가 아니라 자본가, 경영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남의 말, 남의 지혜에 의존하여 투자하고 좌절하는 이들은 논외로 한다)


일하는 만큼 먹고 사는 것, 그저 현금이 들고 나가는 것만 생각했던 내 머릿속 가계부에 '투자를 통한 자본 증식'이라는 선택지가 생겨난다. 그것만으로도 인생의 관점은 크게 변화한다. 흘러가는 대로 벌고 쓰는게 아니라 내가 내 돈을 통제하고 베팅한다는 '감'이 한번 생기면 그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남들이 정하는 연봉 상승률, 회사에서 정한 호봉구조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밑천을 불려나가는 재미가 쏠쏠하게 싹튼다.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인생의 묘미다.


인생은 결국 세상에서 내 몫을 늘려가는 것, 내 밑천을 키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 사업을 할 수 없다면 투자를 하라

거창하게 써댔지만, 결론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하는 투자는 경제적 자유를 위한 지적 노력이자 유희로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레버리지를 써서 단기차익을 노리거나 몰빵을 하는 투자, 본업은 내팽겨둔 채 하루종일 투자에 매달리며 변동성에 몸과 마음이 상하는 투자는 피해야 한다. 투자의 속성상 그렇게 되기 쉬운 건 맞다. 하지만 절제할 줄 알고, 경험을 통해 배울 줄 아는 사람은 투자를 통해서도 한 단계 높은 시야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믿는다.


남이 정해준 선택지에 안주하는 대신 나만의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이들에게 투자를 권하고 싶다. 직접 사업을 하는 건 어렵고 리스크도 크지만, 투자는 비교적 여유를 갖고 공부를 해나가며 점진적으로 내 역량을 향상시킬 기회가 많다. 단조로운 내 일상에 약간의 투자를 곁들임으로써 삶에 효능감을 더하고 내 밑천을 키워나갈 기회를 놓치지 않길 권한다. 부디 지금 막 투자를 고민하는 친구, 투자를 시작한지 얼마 안된 친구들, 나를 포함해 이미 활발하게 투자를 하고 있는 이들 모두가 투자에서 각자가 원하는 몫을 얻어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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