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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Nov 22. 2018

엄마가 엿본 아들의 취업

엄마, 나 전화 좀 받고 올게

 

 올 12월이면 학부에서 졸업할 수 있는 모든 학점 이수를 끝내는 아들 녀석이 있다.

 이 녀석이 꼬꼬마였을 적에 나는 아이만 혼자 티브이 앞에 덩그러니 앉혀두고 무한정 만화를 보게 하는 그런 엄마는 아니었다. 어흠흠.... 나는 어린애 옆에 앉아 혹은 옆에 누워 만화를  같이 봤다.  

'네모네모 스펀지 송', '달려라 왕바우', '드래곤볼 제트', '탑 블레이드' 등등 이렇게 재미있는 만화를 왜 애 혼자서 보게 하겠는가. 같이 보면 훨씬 재미있는데. 아이와 함께 만화 주제가를 우렁차게 부를 때면 오늘은 얼마나 재미있는 에피소드일까 마음이 설렜다.




 시간은 흘러 흘러 애가 자랐고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한국이 아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스쿨 때는 매주 '무한도전'을 낄낄대며 같이 봤고 작년 겨울방학 때는 한동안 '코난 오브라이언(Conan O'Brien)'에 푹 빠져 몇 개의 에피소드를 연달아 보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코난 오브라이언의 2011년 다트머스 대학 졸업 축사를 유튜브로 보았다. 나 혼자서.

아저씨는 졸업 축사도 웃겨요. 앗 저 뒤에 한국 총장님 파안대소



 

많은 부모들이 지난 4년 동안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오늘부터는 매일 볼 수 있어요. 지하실에 있다가 '와이파이가 잘 안 터져' 라면서 올라올 테니까요. 순수 예술이나 철학 전공을 한 애라면 아마도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곳은 고대 그리스 같은 곳 밖에 없을걸요 -- 코난



웃으려고 봤다가 혼자 심각해졌다.


아무리 장성한 자식이라도 부모의 마음은 매일매일 보고 싶고 매일 무엇을 하나 알고 싶을 것이다(적어도 나는 그렇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고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봐도 졸업 후 집에서 너무 오랫동안 '놀고 있는' 자녀들과 한집에서 사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고 모두들 똑. 같. 이 말했다.

이건 자식들이 빈둥빈둥 집에서 늦게 일어나 밥 먹을 시간에 안 먹고 또 빈둥거리고 늦게 자고 그러는 모습이 밉고 보기 싫어서라기 보다는

부모들이란 그 누구도 자식들의 구직기간 중 그들이 당하게 되는 상심, 낙심, 체념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내가 당하는 낙심과 상심은 견딜 수 있지만 내 자식이 거절과 거듭되는 낙방(?)을  당해서 마음이 상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힘든 일일 듯 싶다.

그 마음 변치마소. 어무이. 구박하기 있기 없기

 



아이는 자신이 계획해놓은 다음 꿈으로 가기 위해 당분간 '돈을 벌고 싶다' 고 했다. 존중했다. 바람직했다.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에 대해서는 내가 엄마로서 해 줄 조언도 도움도 아무것도 줄 수 없었다. 이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조언도 못주고 도움도 못주는 엄마라니.

다만 코난의 축사에서 들은 것처럼 혹여 아이가 졸업 후 자기 이삿짐을 몽땅 싸들고 집으로 들어와

엄마 와이파이가 잘 안 터져

라며 몇 날, 몇 달을 지낸다 할지라도 나는 상냥한 엄마가 되어야지 마음속에 준비는 했다.

혹시라도 구박하는 것처럼 들리는 말 같은 건 절대 하지 말아야지, 먹을 것도 잘해줘야지,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었다. 경기 지표가 좋아졌네 잡마켓이 좋아졌네 아무리 떠들어도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지표는 허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우리 애도 직장을 잡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혼자 많이 생각했다. 다른 집 애들이 힘들면 우리 애도 어렵고 힘들 수 있지. 그럼 그럴 수 있지.


 며칠 전 땡스기빙 연휴를 맞아 아들 녀석이 집에 왔다. 근 석 달만이었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라서 그런가 유난히 꺼칠하고 피곤해 보이고 탈진한 듯 보이는 녀석도 집에 들어서자마자 '와~ 집이다' 이러면서 좋아했다.

꼬치꼬치 묻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이런저런 회사에 이력서도 내고 전화 인터뷰도 하고 정식 인터뷰도 가고 하면서 이번 학기를 보내는 중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눈 밑에 다크서클 확연한 아이를 보니 마음이 좀 그랬다.

너랑 나랑 나란히 엎드려 드래곤볼 제트 같은 만화 영화 주제가를 합창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괜스레 콧등도 찡했다.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도 않고 화장실에도 가져가는 등 왜 저렇게 전전긍긍할까 싶을 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엄마 나 전화 좀 받고 올게


 방으로 쏙 들어가 문을 닫고 조금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영어를 말할 때 아이의 목소리는 한국말을 할 때보다 조금 낯설다.

 뭔가 중요한 전화를 하는 중이구나 싶었다. 구직에 관련된 전화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뭐라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은데 잘 안 들린다. 아오 답답해.



1월부터 출근하라는데


방문을 삐꼼~ 열고 녀석이 나왔다. 드래곤볼 제트 주제가 부를 때처럼 명랑한 목소리로 핸드폰 쥔 손을 까딱까딱 흔들며 활짝 웃는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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